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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Jun 30. 2024

고양이와 팔레스타인

이번 글이 100번째 글이더군요. 그래서 서두를 색다르게 정했습니다.


부모님 댁이 산 문턱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좀 있는데, 어머니께서 집 안 마당뜰에서 밥과 간식을 챙겨주십니다. 몇몇 고양이들은, 특히 새끼들은 다 자랄 때까지 보금자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지하실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여럿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임신한 암컷 한 마리가 지하실에서 출산을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던 고양이라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여섯 마리 중 다섯 마리탯줄이 모두 뒤엉킨 채로 태어났더군요.


어머니께서 도움을 청하셔서 급히 본가로 갔습니다. 하루가 지나는 동안 탯줄이 말라비틀어지고 쪼그라들어서 다섯 마리가 1~2cm 이내의 간격으로 모두 뭉쳐있었습니다. 당연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캄캄한 지하실에서 랜턴으로 비춘 그 모습은... 만화에서나 보던 덩어리 괴물이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들을 붙잡고, 어머니께서 가위를 소독하고 탯줄을 잘랐습니다. 탯줄이 너무 짧다 보니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어찌어찌 다섯 마리 모두 자유를 찾았습니다. 혹여 잘못 조치한 게 있을까 봐 수의사 선생님을 찾아뵙고 문제가 없는지 여쭈어 봤는데 잘 처리하셨다고 했습니다.


새끼들은 다행히 건강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어머니께서 마당에 나와 보니 새끼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CCTV로 확인해 보니 마당에서 지내고 있는 다른 고양이의 소행이었습니다.



임신한 고양이는 주변에 다른 고양이가 없는 안전한 장소에서 새끼를 낳고 기릅니다. 이번에 출산할 때도 마당에서 지내고 있던 다른 고양이를 쫓아낸 다음에 지하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딱 두 마리의 고양이는 근처에서 지내는 걸 허용했습니다. 반년 전에 낳은 자기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바로 그 둘 중 한 마리인 (브)라운이습니다. 죽은 새끼의 형인 셈이지요. 마당 CCTV를 확인한 어머니 말씀으론 새끼를 물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합니다. 같은 날, 마리의 다른 새끼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운이가 괴롭혀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건강이 안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지하실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라운이가 지하실에 들어갈 때마다 막았습니다. 3-4일쯤 지나자 새끼들이 지하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라운이는 더 이상 동생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새끼는 너무 작고 고양이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실제로 쥐처럼 보입니다.) 동족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게 어머니 추측입니다.



살아남은 세 마리는 나날이 커졌습니다. 마당까지 나와서 돌아다녔고요. 그러나 한 마리, 한 마리씩 죽었습니다. 병원에도 데려가봤지만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탯줄이 엉키지 않은 채로 건강히 태어났던 단 한 마리만 살아남았습니다. 털색을 딴 이름을 갖게 된 사탕이는 지금 무럭무럭 자라서 3개월이 되었습니다. 라운이랑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미 고양이의 출산이 잦아 구청의 도움으로 중성화를 해서 사탕이가 일생의 마지막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간의 사연을 구구절절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본론이 뒷전이 되어버릴까 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제가 오늘 사탕이와 라운이의 이야기를 들려드린 까닭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만 살지 않고 중동과 유럽 등지에 널리 걸쳐 살았습니다. 토종 아랍인(=아랍 유목민)들이 사는 아라비아반도에서도 유대인들이 부족을 이루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아랍인을 "형제"로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유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 이스마엘이 남쪽으로 내려가 민족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그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랍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7세기 초까지 아라비아 반도에서 많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아랍인들은 유대 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유대인과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이 창시되고 아랍인들이 유대인들 위에 군림하면서 양자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십자군 시기 이후로 무슬림의 박해가 거세졌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일반적이지 않았고 가끔 찾아오는 일순간의 재앙에 그쳤습니다. 박해가 일상이었던 기독교 유럽보다 이슬람 지역이 안전하다는 것이 중세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19세기 말까지도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대체로 양호했습니다. 특히 심각한 박해는 거의 없었던 팔레스타인에서는 양자의 관계가 탁월하게 좋았습니다. 정치학자 메나헴 클레인(Menachem Klein)은 『공통의 삶 : 예루살렘과 야파, 헤브론에서의 아랍인과 유대인』에서 1900년을 전후로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증언을 소개합니다.


야콥 여호수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집 뜰을 공유했다. 우리는 한 가족 같았고, 우리 모두가 친구였다.” ... “무슬림 여성들은 저녁에 우리 어머니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위층에서 내려왔다.” ... “아이들은 함께 놀았고, 동네에서 다른 아이들이 우리를 괴롭히면 우리 뜰에 사는 무슬림 친구들이 보호하러 와주었다.”


요나 코헨은 자서전에서 심지어 “아랍 목동들도 유대인들과 친했고 모든 유대교 계율과 관습을 알았다.”고 적었다. (그의 아버지 랍비) 하캄 게르숀은 단칸방에서 유대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전통 소학당을 운영했다. (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에서 아들들을 입학시키러 (아랍) 부모들이 찾아오자 랍비는 깜짝 놀라며 아랍 소년들에게 유대 교육은 적절치 않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부모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랍비여, 그건 문제가 되지 않소. 아이는 당신으로부터 바람직한 행실을 배울 겁니다. ... 아이가 크면 그때 우리네 학교에 보내면 됩니다.”


메이르 헤페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디브 니메르를 기억한다. 그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랍비) 하캄 엘라자르 미즈라히에게 할례를 받은 무슬림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형제들 여럿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 (유대 율법에 따라) 할례를 시켜 장수를 기원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벤 시온이라는 이름을 받아 우리 유대인들 사이에서 사용했다.


다섯 살 때 예루살렘에서 실완으로 이사 간 ... 요셉 메유하스는 ... “저녁에 소학당에서 돌아오거나, 또는 방학이나 휴일이면 항상 가장 친한 이웃들인 무함마드와 파트마, 알리, 카디자네 집을 방문하곤 했다. 그들은 빵과 물을 나누어주고, 때로는 ‘후식’ 삼아 밤늦게까지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대하고 재워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예의범절과 가치관, 생활방식, 담화, 좋아하던 이야기들이 내 유년 시절의 교육이 되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209-10)


당시 아랍인과 유대인, 특히 무슬림과 유대인의 돈독한 관계는 어떤 역사가도 부정하지 못하는 굳건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고작 반 세기만에 완전히 뒤집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서 싸우고 있지요. 팔레스타인 역사를 10년 가까이 연구한 연구자로서 말씀드리건대, 이런 비극을 잉태하고 키워가는 근원은 무지입니다.


사탕이 형제들이 갓 태어났을 때 라운이가 괴롭혔던 건 나쁜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무지가 동생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대인은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전쟁에 찬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국민들도 진실을 모른 채 팔레스타인인이나 혹은 유대인을 욕하고 있습니다.


양자가 100년 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가는 건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 뿐이지요.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진실을 배우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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