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죽고 싶다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죽지도 말고
반 지하 구석에서 비참하게 혼자서 죽지도 말고
인공호흡기 꽂고 요양병원에 누워 죽는 것도 모르고 죽지도 말고
평생 그토록 벗어나 보고자 했던 평범함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또 깨닫는 그 어느 날
달이 환하게 뜬 날에 죽고 싶다.
인생을 살아보니 알겠다.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렇게 꿈꾸고 노력하고 또 포기하며 살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아무리 해도 완벽한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렇게 평범할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날도
적당히 실수하고 적당히 후회하고
적당히 반성하고 적당히 만족하다 가고 싶다.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꿈을 꾸다 가고 싶다.
그런 평범한 날에 잠을 자듯 가고 싶다.
운이 좀 더 좋다면
친구가 보고 싶고 가족이 반가운 날
술 한 잔이 아직 맛있고 담배 한 모금이 아직 그리운 날
돌아보니 그렇게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
바람은 살랑 부는 데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하얗게 달이 뜬 날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줄 것 같은 커다란 보름달이 뜬 날
그런 날에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