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에 숨어 있는 인문학·역사·생명과학 이야기
회사 건물 1층, 겨울 아침.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건조한 공기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코 안쪽이 살짝 쓰릴만큼 마른 공기, 패딩 지퍼가 서로 스치는 소리, 바닥을 긁는 운동화 밑창.
나는 늘 그랬듯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서 7층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탁!”
손끝에서 작게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바늘로 콕 찌른 것 같은 따끔함이 올라왔다.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움찔하며 나를 보더니 웃었다.
“안 놀라네요?”
우리는 같이 피식 웃었지만, 손끝의 잔여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작은 통증이라기엔 이상하게 기분이 찌릿했다.
몸에 쌓여 있던 짜증이, 아주 사소한 계기를 만나서 튀어나온 기분.
생각해 보면 이 정전기는 매년 겪는 겨울철의 일상 이벤트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너무나 익숙해서 놀라지도 않게 된 거겠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처음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을 겪었을 때는 어땠을까? 전기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이 정체 모를 찌릿함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우리가 지금 “정전기”라고 부르는 이 감각은, 한때는 마법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유리막대와 모피를 마찰시키면 막대에 가까이 댄 머리카락이 갑자기 곤두서는 실험.
이건 처음엔 과학보다 마술에 가까운 공연이었다.
18세기 유럽.
실험하는 사람은 무대 위에서 유리막대를 부지런히 문지르고, 관객들은 줄지어 서서 서로 손을 잡고 기다린다. 맨 앞사람의 손가락을 전기가 통하는 금속 구에 가까이 대는 순간, 맨 끝에 서 있던 사람이 더 강하게 “찌릿”하고 반응한다. 사람들 사이를 타고 이동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힘.
당시 사람들에게 이건 놀라운 ‘쇼’였다.
더 멀리 가면, 번개는 오랫동안 신의 무기였고 신의 분노였다. 검은 구름 사이를 찢고 내려오는 빛과 굉음은 저 위에서 내려오는 경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강이나 늪에 사는 전기 물고기들은 악령이 깃든 존재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먼저 주술로 불렀다. 그 힘에 이름을 붙이는 대신, 신의 뜻, 저주의 흔적, 운명 같은 말들로 둘러싸며 겨우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마법 같은 장면들을 반복해서 실험하고 이해해 나가며 우리는 그 힘을 ‘전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손을 잡았을 때 온기를 느끼기도 전에 느끼게 되는 ‘앗!’ 하는 찌릿하고 따가운 느낌.
바로 인류가 처음 느꼈던 전기에 대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다시,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와 보자.
겨울만 되면 엘리베이터와 문고리는 왜 이렇게 공격적일까?
첫 번째 이유는 공기다. 겨울 실내 공기는 건조해서, 전기가 슬쩍슬쩍 빠져나갈 통로가 부족하다.
습기가 많은 날에는 공기 중의 물분자가 전기를 조금씩 나눠 가지며 우리 몸에 쌓인 전하를 흘려보내는데, 건조한 날에는 그 역할을 해 줄 친구가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전기가 도망갈 곳 없이 쌓여 간다.
두 번째 이유는 옷이다. 패딩, 니트 같은 겨울 옷은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절연체에 가깝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패딩이 의자 등판과 쓱쓱 마찰되고, 카펫 위를 걸으며 신발 밑창이 바닥과 부딪히면서 전자가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그렇게 내 몸 한쪽에 전하가 모이면, 나는 모르는 사이에 ‘충전만 잔뜩 된 인간 배터리’가 되어 있다.
세 번째는 금속이다. 금속으로 된 엘리베이터 버튼, 문고리, 손잡이는 전기가 아주 잘 통한다.
건조한 공기와 겨울 옷 속에 갇혀 갈 곳 없이 쌓여 있던 전기가 버튼에 닿은 우리의 손가락이라는 ‘비상구’를 발견하는 순간, 한꺼번에 쏟아져 나간다. 그게 바로 우리가 느끼는 찌릿한 느낌의 정체다.
이걸 조금 다르게 말하면, 우리 몸은 늘 주변과 전하를 주고받는 열린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정전기는 그냥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라, 내 몸과 환경이 주고받는 대화의 불협화음이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생물이 있다. 바로 전기뱀장어다.
어두운 강바닥, 흐릿한 물속에서 전기뱀장어는 우리보다 훨씬 강한 전압을 몸 안에서 만들어낸다.
우리가 우연히 마찰로 만들어내는 정전기와 달리, 이 친구들은 아예 몸 안에 전기 회로를 ‘설계’해 진화해 온 생물이다.
전기뱀장어의 몸속에는 전기기관이라 불리는 전기세포들이 얇은 판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 마치 얇은 건전지를 수백, 수천 개 차곡차곡 포개 놓은 것처럼. 각 전기세포는 아주 작은 전압밖에 못 만들지만, 이걸 길게, 많이, 직렬로 이어 붙이면 전체적으로 꽤 높은 전압을 낼 수 있다.
뱀장어가 먹잇감을 향해 방전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이 전기세포들은 피아노 건반처럼 거의 동시에 “딱!” 하고 켜진다. 순간적으로 강한 전기장이 만들어지고, 물속의 작은 물고기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퍽 하고 멈춘다. 전기는 뱀장어에게 무기다.
하지만 전기가 이들에게 무기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 물고기들은 더 약한 전기장을 이용해 주변 환경을 느낀다. 물속의 돌, 다른 물고기, 장애물을 전기장의 변화로 감지하는 일종의 전기 촉각으로 삼아 서로의 미세한 전기 패턴을 일종의 ‘언어’처럼 쓰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심장 박동과 뇌의 활동, 손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진 신경들이 전하는 신호까지.
모두 아주 미세하고 섬세하게 조절되는 전기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전기를 밖으로 쏘아 보내 상대를 기절시키진 못하지만, 전기가 없으면 심장은 박동을 멈추고, 뇌는 생각을 멈추고, 신경은 감각을 잃는다.
우리는 전기뱀장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하고 섬세한 음악처럼 몸 안에서 저마다의 리듬으로 전기를 주고받는, 생각보다 훨씬 ‘전기적인’ 생물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다시 버튼 앞에 선다.
그리고 잠깐 손을 멈춘다.
나는 늘 바닥과, 공기와, 옷과, 금속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회사에서. 집에서.
나 혼자 서 있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전기들 사이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 있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 같아도,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리듬을 맞추며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의 방향과 세기가 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처럼, 정말로 소중한 것들은 대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 감정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뿐, 내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탁” 하고 정전기처럼 튈 때가 있다.
괜찮다고 넘겼던 말 한마디에, 엘리베이터 버튼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손끝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저릿해질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적 리듬을 서로 맞춰 가면서 나의 리듬과 어울리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댈 때면, 나는 잠깐 멈춰 생각해 본다.
지금 내 안의 전기들은,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떻게 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