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숨어 있는 인문학·역사·생명과학 이야기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난 여전히 게으르다.
며칠 전 출근을 하면서 본 낙엽을 보고 써놓고 브런치에 저장해 둔 이 글을.
첫눈이 내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게으른 자신을 탓하며 가슴속 주머니에 곱게 접어두었던 가을을 꺼내 펼쳐본다.
어느덧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출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보니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여름에는 그토록 푸르게 빛나던 잎들이었는데 이제 그 역할을 다 마친 모양이다.
자연의 이치는 모두 같은 것 같다. 태어나고 빛나고 저물고 돌아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릴 땐 낙엽이 가을 한정 이벤트 같은 느낌이었다.
운동장에서 일부러 낙엽 더미를 골라 밟았다. 바스락, 바스락.
그 소리가 좋아서, 괜히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같은 낙엽을 보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나도 점차 낙엽이 되어 가는구나.’
‘세월이 참 빠르네’
문득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낙엽을 보며 감성적이 되고, 측은함을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아 낙엽이 떨어지는구나.’
‘저 나무도 겨울엔 힘이 빠져서 잎을 못 붙들고 있나?’
‘저 나무도 나이가 먹는구나.’
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제때 낙엽을 떨어뜨린다는 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신호다.
“이 나무는 제때 계절에 맞춰 대응할 여력도 있고, 에너지와 자원 관리가 잘 되는 건강한 나무구나.”
잎은 나무에게 태양광 패널이자 호흡기이다.
여름 내내 햇빛을 받아서 에너지를 만들고 공기가 물질을 주고받는 최전선이다.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서 점점 태양빛은 줄어든다.
잎을 유지하는 것은 나무에게 오히려 에너지 자원낭비가 되어버린다.
벌어들이는 에너지는 적어지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나무는 어느 순간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이제는 잎을 정리할 때가 됐다.”
처음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유지비만 많이 드는 고물이 되어간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 어떤 관계가 ‘잎’과 같은 존재일까?
가을이 되면 잎의 색이 변한다.
찬란하게 빛나던 초록이 옅어지고 노랑, 주황, 빨강이 번져온다.
겉으로 보기엔 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학교에서 한 번쯤 들어본 단어. 엽록소.
여름동안 잎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던 이 물질이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만드는 주인공이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이 비싼 자원을 그대로 버리지 않고,
엽록소를 분해해서 그 안의 영양분을 줄기와 가지로 다시 돌려보낸다.
그리고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그 뒤의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단풍 사진은 사실 나무가 조용히 자원을 회수하는 현장 중계였던 것이다.
색이 변한다고 해서 “이제 끝났구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잎과 가지가 만나는 자리 ‘잎자루’에 이탈층이라는 특별한 층이 만들어지고 계절에 맞춘 호르몬 신호에 따라 세포와 세포 사이 결합이 살짝 느슨해져 바람에 툭 떨어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마도 나무 나름의 이별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듯.
낙엽에서 나무가 생존을 위해 택한 전략을 세 가지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 번째는 에너지 관점에서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는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빛이 충분한 계절에는 잎이 많을수록 좋고 패널이 많을수록 생산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계산이 달라진다.
잎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물, 영양분이 잎이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커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무는 더 이상의 투자를 접고 비효율적인 가지와 잎부터 정리하기로 과감하게 결론을 내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비슷한 일이 많이 있다.
이미 시간과 돈과 감정을 너무 많이 쏟아부어서 이제 와서 그만두기 어려운 일들.
겉으로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게 과연 남는 장사인가" 싶어지는 것들.
나무는 그 지점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계절마다 한 번씩 크게 가지를 정리한다.
우리는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도 여전히 손익계산서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그냥 ‘익숙하니까’라는 이유로 들고 가는 건 없을까?
두 번째는 위험관리 관점에서 일종의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다.
겨울에 잎을 달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눈이 달라붙고, 얼음이 얼고, 가지에 가해지는 무게가 훨씬 늘어난다.
곰팡이·해충·병원균이 달라붙을 위험도 커진다.
결국 그 무게와 병을 이기지 못해서, 가지가 부러질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역할을 달고 산다.
회사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역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친구, 커뮤니티, SNS에서의 역할까지.
하나의 나무가 수많은 잎을 달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역할을 몸에 매달고 살아간다.
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면, 나라는 나무도 흔들린다.
열 장의 잎이, 백 장의 잎이 동시에 흔들릴수록 나무는 더 크게 흔들린다.
그 무게와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부러지고 만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부러지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한다.
먼저 잎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지탱할 여유를 남겨두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재생의 관점에서 낙엽은 끝이 아니라 순환의 첫 단계라는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서서히 부패하고 부서져 곰팡이와 미생물의 도움으로 흙의 일부가 된다.
그 흙의 일부는 다시 다음 해 새싹의 양분이 되고, 낙엽이 떨어져 나간 부위에서는 그 낙엽의 양분을 바탕으로 다시 새 잎이 돋아난다.
그야말로 죽음이 형태를 바꿔서 다시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한 일, 정리한 인간관계, 수많은 선택들이 다 그렇다.
당장은 ‘버린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지금의 나를 떠받치는 양분과 기준이 되어 있다.
나무의 선택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인 것처럼.
이제 시선을 조금 더 안쪽으로 돌려 보자.
이런 낙엽 전략은, 사실 우리 몸속에서도 이미 쓰이고 있다.
오래돼서 제 기능을 못하거나, 너무 많이 손상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 세포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 과정을 ‘세포 자살(아포토시스)’이라고 한다.
특히 피부나 장 안쪽처럼 지속적인 자극에 노출되는 세포들의 경우 이 과정이 더욱 활발하다.
이름만 들으면 좀 과격하지만 실제로는 문제 있는 세포가 계속 남아 우리 몸 전체를 위협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세포의 숭고한 선택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몸 안에서는 오늘도 계속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몸 안에는 낡은 단백질과 세포소기관을 다시 쓸 수 있는 ‘자기 포식(오토파지)’라는 재활용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애초에 우리 몸은 비효율적인 일부를 낙엽처럼 떨어뜨리고 그 부산물을 다시 활용하며 전체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물건은 오래 사용해 오며 정이 들어서.
어떤 물건은 익숙해져서.
그리고 어떤 물건은 언젠가 다시 사용할 것 같아서.
우리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역할까지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붙여가며 무언가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잎이 하나씩 흔들릴 때마다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무는 덜어냄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다음 계절로 나아간다.
우리 몸도 덜어내고 비워내며 우리를 지키고 성장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도, 덜어내고 비워내고 떨어뜨려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낮동안 햇빛을 좀 받은 덕분인지 낙엽더미는 어느 정도 말라 있었고 사이사이 흙과 섞인 잎들은 부서져 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낙엽 위를 밟고 지나가 보기로 했다. 바스락.
어릴 때처럼 가볍게 부서지는 소리라기보다는, 조금 더 낮고 촉촉한, "갈아지는" 느낌의 소리.
발밑에서 부서지는 잎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게 그냥 사라지는 장면이 아니라 어딘가로 섞여 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나도 이번 겨울을 지나기 위해 뭔가 하나쯤은 덜어내도 괜찮지 않을까?'
당장 거창한 무언가를 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에너지를 과하게 잡아먹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
관성 때문에 붙들고 있는 역할들.
남들에게 좋아 보일 것 같아서 유지하는 관계들.
이 중에서 하나 정도는, 낙엽처럼 조용히 이탈층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언제라도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이별 준비를 해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걸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첫 번째 낙엽이 살짝 흔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매년 잎을 다 내려놓고도, 나무는 봄마다 다시 싹을 틔운다.
이 계절에 무언가를 하나쯤 덜어놓아도, 나도 다시 싹을 틔우지 않을까?
낙엽은 나무가 포기한 게 아니라, 나아가기 위해 먼저 내려놓은 것들이다.
나에게도 그런 낙엽이 한두 개쯤은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