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에 숨어 있는 인문학·역사·생명과학 이야기
나는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시답잖은 일상 일로 웃으며 떠들어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회식은 더더욱 싫다. 내일 아침 머릿속 어딘가에 눌러앉아 끈적거릴 알코올의 느낌도 싫고, 그 알코올로 인한 스트레스마저도 먹어치울 듯 올라올 음식에 대한 탐욕도 싫다.
우리는 다음날 이렇게까지 힘든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
‘이번엔 적당히 마셔야지’라는 다짐조차도 누군가 따라주는 술잔에 스르륵 녹아 사라진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술을 마셔왔을까?
생각보다 술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발견된 까마득한 옛날의 발효 음료의 흔적.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맥주, 이집트의 포도주까지 축제에서, 제단에서, 일상에서, 술은 인간 사회와 함께 존재해 왔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곡물과 과일을 발효시키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알코올’이라는 마법의 약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농경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술은 인간과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한 연구에서, 야생 침팬지가 발효된 야자나무 수액을 찾아 마시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땅에 떨어져 자연 발효된 과일, 그 달콤하고 쿰쿰한 알코올 향에 이끌려 비틀거리는 원숭이와 새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생존을 위해 열량 높은 '발효된 과일'을 찾아 헤매던 그들의 본능. 아마도 우리의 먼 조상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술을 마실 때마다 다음날 느끼는 두통과 갈증, 그리고 음식에 대한 탐욕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먼 옛날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몸이 선택한 생존 전략의 가혹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발효된 과일은 열량이 아주 높은 에너지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알코올이라는 꽤 강한 독성을 가지게 된다.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알코올이라는 독성을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
과일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알코올 내성이 강한 개체와 약한 개체를 관찰했다.
내성이 강한 파리는 발효된 과일 근처에서 더 오래 머물렀고,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반면 내성이 약한 파리는 빨리 떠났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알코올을 처리하는 능력은 때로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간의 ‘알코올 분해대사’이다.
알코올 분해대사의 핵심은 바로 알코올 탈수소효소(ADH)와 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 두 개의 효소이다.
이 두 효소는 간에서 주로 작동하며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ADH), 다시 아세트알데히드를 아세트산으로(ALDH) 바꾸는 일을 한다.
아세트알데히드는 독성이 오히려 알코올보다 더 강하여 이 물질이 체내에 쌓이면 혈관과 신경을 자극해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두통을 일으키며 심장이 빨리 뛰게 한다. 우리가 겪는 숙취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물질 때문이다.
다음 처리단계에서 아세트산이라는 비교적 독성이 약한 물질이 되고, 마지막 대사과정을 거쳐 물과 이산화탄소로 배출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부분이 다시 생겼다.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더 빨리 취하고 어떤 사람은 더 늦게 취하는 걸까?
그건 ADH와 ALDH 두 효소의 활성도 차이이다.
어떤 사람은 ADH는 빠르지만 ALDH가 느려서, 아세트알데히드가 빨리 쌓인다.
그래서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어떤 사람은 두 효소가 모두 빠르게 작동해서, 같은 양을 마셔도 덜 힘들다. 이건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그리고 술을 자주 마시면 술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후천적 내성에 속하지만 좋은 적응이 아니라 몸이 알코올에 그만큼 둔감해졌다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증상들 이외에도 술이 세거나 약하거나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하나 있다.
‘술 먹은 다음날 해장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음주 다음날 음식에 대한 탐욕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리라.
술을 잘 마시는 사람도 못 마시는 사람도 반드시 다음날에는 든든하게 무언가를 먹으려 하는 식탐이 생긴다.
이것은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알코올과 혈당의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간은 우리 몸의 에너지 관리자로서 작용하지만 알코올 분해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경우는 간의 포도당 공급 조절이 평소와 달라진다.
공복상황에서 음주의 경우에 간은 포도당의 공급보다 알코올 분해대사를 우선시하게 되는데 이는 혈당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음주는 치킨, 피자, 튀김 등 안주를 함께 먹게 되고 이는 급격한 당분의 유입을 가져와 혈당증가의 원인이 된다. 이 경우 몸은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슐린의 분비를 늘린다.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그것과 같은 것으로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더 잘 들어가게 해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이다. 이렇게 분비된 인슐린 덕분에 우리 몸은 지나치게 높아진 혈당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받는 것이다. 인체란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토록 정밀한 기계이다.
그러나 이 투입된 인슐린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이후까지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다음날까지도 혈당은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몸은 뇌에 혈당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당을 보충하기 위해 식욕이 당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식욕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몸에는 식욕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호르몬(렙틴, 그렐린)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렙틴은 배부름과 저축 상태를 알리는 호르몬이고, 그렐린은 배고픔을 알리는 호르몬이다.
연구에 따르면 음주는 이 두 호르몬의 균형을 흔들어 다음날 식욕에 영향을 준다.
세 번째는 일종의 뇌 보상 시스템이다.
알코올은 잠깐 기분을 좋게 만들고 긴장을 풀어주고 뇌는 그 감각을 기억해 둔다.
그래서 다음날이 되면, 아주 가벼운 중독처럼 비슷한 보상을 줄 것 같은 짭짤하고 달달한 음식을 찾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요구, 가족으로부터의 요구, 직장으로부터의 요구...
개개인은 다양한 가면을 쓰고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도록 요구받으며 다양한 롤플레이를 해야 한다.
음주와 회식도 그런 롤플레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페르소나와 롤플레이로 인해 다양하고 많은 육체적 심리적 압박도 받는다.
동물들과 달리 현대의 인간은 사회를 형성해 살아감으로써 에너지를 얻어 생존하기 위함이 아닌 그런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음주가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음주가 결국 자신의 몸을 해친다면,
마음을 달래 주는 데 쓴 한 잔이, 결국 마음이 사는 집인 몸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회식 자리에서 한 잔을 더 받을지, 물을 한 모금 더 마실지 선택하는 그 작은 순간에
이제 한 번쯤은 마음 대신 몸의 편을 들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술자리는 몇 시간 만에 끝나지만, 내 몸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야근을 계속해야 하니까.
회식이 끝난 밤, 소파에 앉아 물 한 잔을 더 들이켜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