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글-크리스마스 이야기] 세 나무 이야기

크리스마스 D-3

by 겨자씨앗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높은 둔덕에 세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함께 자라기 시작해 이제는 어엿해진 세 친구는 같이 풍파를 겪어왔다. 밤에는 고요한 달빛과 별빛, 낮에는 작렬하는 태양과 바람. 어느 때는 폭풍우 휘몰아치는 거센 파도를 보고 움츠려들다가도 새가 깃들이고 짭조름한 냄새까지도 함께 했다.


-난 말이야. 이 다음에 온갖 보석이 가득 담긴 부자 나무가 되고 싶어. 진귀한 보물을 싣고 사람들이 나를 보며 열광하겠지. 생각만 해도 벅차다.

-난 멋진 배가 되어서 장군이나 왕을 태우고 승승장구하고 싶어. 높고 존귀한 사람들을 태우고 나부끼는 기를 펄럭이며 뽐내는 선박이 된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난 어디 가고 싶지 않아. 그냥 여기서 바다와 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게 제일 좋아. 제일 높으시고 선한 신께서 나를 굽어보시니 얼마나 좋아~.

장성하고 굵어진 늠름한 나무들은 저마다 멋지게 위용을 드러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세 나무는 모두 베어졌다. 세 번째 나무는 너무나 슬펐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데…

첫 번째 나무는 아담한 여물통이 되어 어느 여관집 마구간 동물들 앞에 놓였고,

두 번째 나무는 어선이 되어 작은 마을 갈릴리에서 어부들을 태웠고,

세 번째 나무는 정말 슬프게도 십자가를 만드는 재료로 쓰여 강도, 범죄자, 악랄한 악인들을 만나야 했다.

이 얼마나 참혹하고 참담한 일인지.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어느 한 분을 똑같이 만나게 된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이 비친 거룩한 밤, 아기가 구유에 태어났는데, 먼 나라에 온 박사들과 목자들, 부모님까지도 자신에게 경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배가 뒤집힐 만큼 불어대는 사나운 밤, 그분은 편안하게 잠들어있다. 모두 불안에 떨면서 그분을 깨우는데 말씀하시는 순간,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 아닌가.

늘 처절한 부르짖음을 들으며 괴로워하는 이 십자가 나무에 그분이 달리셨다. 사람들은 이제 십자가를 보면 그분을 기억한다. 최고의 사랑. 사랑 자체이신 그분을.



어렸을 때 갈망했던 꿈은 지금의 내 모습과 많이 다르다. 분명 예나 지금이나 매 순간은 소중하다. 고교 시절, 범생이었지만 맨 뒤 책상에 앉아 선생님보단 천장에 걸린 텔레비전에 비친 교실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었다. 조그만 상자 안에 갇혀버린 우리들. 벗어나고 싶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저 울타리 너머 교과서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일들이 널려있을 텐데. 나는 장사를 해야지. 교실보다 세상이 배움터지. 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 안주해버렸다.


40대가 되어버린 내 중반의 모습은 10대땐 교과서에, 20대땐 사무실에, 30대땐 집안에, 40대땐 아이들 속에 파묻혔다. 인생이 뜻한 바대로 가진 않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삶엔 반환점, 전환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건, 어떤 사람, 어떤 상황들이 나를 완전히 다른 ‘나'로 만들기도 한다. 내겐 주부라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차차 시작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나누는 토론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전업주부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세계를 누비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 평도 안 되는 책상에서 글 쓰는 정신노동이 그 무엇보다 해방과 해소와 위로를 주었다.


모든 사람의 신적인 부르심은 다르며 하늘에서 부여한 역할도 다르다. 각자의 생 앞에서 영원한 안목으로 오늘 주어진 삶을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나의 꿈이 비틀리고 녹아버려 사라진 것만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꿈속에 있으며 나아가고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의 묵상: 저는 꿈을 꿉니다. 그분이 이루어가시도록 내어드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