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서늘한 위엄
기록으로만 접하던 존재를 실제로 마주하기 전, 마음속에는 이미 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자리 잡는다. 모기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화려한 생태와 압도적인 크기, 그리고 보석 같은 빛깔에 대한 정보들은 만남에 대한 갈증을 오랫동안 부추겨 왔다.
2018년의 여름은 그 갈증이 마침내 해소된, 이 신비로운 존재와의 강렬한 조우로 기억된다. 그해 6월, 강릉의 숲 속 나무 수피에 붙어있는 수컷 광릉왕모기를 처음 발견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7월, 놀랍게도 녀석은 같은 나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수컷 개체를 만난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넘어선 어떤 신비감을 주었다.
보통의 곤충들에게, 하물며 그 연약해 보이는 모기라는 종에게 한 달이란 생의 운명이 몇 번은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녀석이 같은 자리에 상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왕모기류가 자신이 태어난 서식지나 영양 공급원 근처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습성(Site fidelity)이 강하다는 학술적 기록을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귀한 경험이었다.
숲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끈끈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생명체는 온몸의 금속 빛깔과 흔들림 없는 정주성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괜히 그 이름 앞에 '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이 아님을, 그 당당한 체구와 정지된 시간으로 웅변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왕'의 생애는 지독하리만큼 아름다운 문법으로 쓰여 있다. 녀석의 주둥이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살을 뚫기 위한 창이 아니다. 녀석은 꽃에 조용히 내려앉아 깊숙이 주둥이를 박고 달콤한 꿀을 들이켠다.
사람의 피를 빨아 알을 키우는 대신 꽃의 꿀이나 수액을 마시며 숲의 수분 매개자로 살아가는 그 평화로운 식사 시간은, 모기라는 존재에 대한 세간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녀석의 매끄럽게 휜 주둥이는 오직 생명의 정수를 탐닉하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유충 시기에도 흡혈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는 천적 노릇을 톡톡히 해내니, 사람에게 유익한 '익충'으로서의 호감 또한 거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한 생존 전략이 도사린다.
왕모기속(Toxorhynchites)에 속한 유충은 번데기가 되기 직전, 주변의 다른 유충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이른바 '예방적 살육(Pre-pupal killing)' 습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기 위한 본능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고요히 견뎌야 할 '번데기' 시절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잠재적 위협을 미리 도려내는 냉철한 계산이다.
왕모기속(Toxorhynchites) 성충의 산란 방식 역시 숲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치열한 지혜를 보여준다. 암컷은 물 표면에 직접 내려앉는 대신, 공중에서 타원형을 그리며 비행하다가 알을 물속으로 하나씩 던지듯 투하한다.
물가에 도사린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 '공중 폭격' 같은 산란을 거쳐 태어난 유충은, 다시 그 잔혹한 살육의 터널을 지나 비로소 꽃을 탐하는 화려한 성충이 되는 것이다.
화려한 금속 빛깔 옷을 입고 꽃 사이를 누비는 광릉왕모기의 평화는, 어쩌면 물속에서 보낸 그 처절하고도 정교한 투쟁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숲을 오르다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생명 속에는 이토록 다층적인 면모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던 무늬가 비로소 생존의 서사로 읽히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숲의 비밀스러운 페이지를 한 장 넘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