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나방 애벌레, 가시를 버리고 젤리가 된 이유
몇 해 전 강릉의 어느 숲, 오리나무 잎사귀 위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곤충이라기보다는 누군가 먹다가 잎에 붙여놓은 듯한 녹색의 젤리 한 조각, 혹은 잎사귀에서 갓 배어 나온 영롱한 수액 덩어리 같았다.
흔히 애벌레 하면 떠오르는 마디의 굴곡이나 꿈틀거리는 다리는 고사하고, 생명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한의 외형적 특징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저 잎맥에 몸을 맡긴 채 완벽한 타원형의 곡선을 그리며 붙어 있는 모습은 기묘한 정적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더 큰 놀라움은 이 정체불명의 ‘젤리’가 쐐기나방과의 애벌레라는 사실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한 통증을 안겨주는 쐐기나방 애벌레의 악명 높은 독가시가 아닌 이토록 무방비해 보이고 부드러운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간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반전이었다.
이 매끈한 생명체는 끝검은쐐기나방의 애벌레였다. 혹시나 만지면 울버린의 발톱처럼 외피 속에서 가시가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해서 한동안 이 애벌레를 만지는 것을 주저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곤충의 외형을 지워버린 끝검은쐐기나방 애벌레의 몸은 극단적인 단순함 속에 고도의 생존 전략을 숨기고 있었다. 가시라는 거추장스러운 무장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얻은 매끈한 곡선은 잎면의 굴곡에 완벽하게 밀착된다. 포식자의 눈에는 생명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그저 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이나 잎 자체의 일부로 비치게 만든다.
다른 쐐기나방들이 더 날카로운 독가시를 세울 때, 이들은 오히려 무기를 지워버림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러한 가시의 퇴화는 결코 퇴보가 아니다.
분자 계통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조상은 이미 강력한 독가시를 가지고 있었으나, 특정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를 독립적으로 소실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가시를 포기하게 된 배경에는 방어의 '타깃'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쐐기나방 특유의 독가시는 새나 사람과 같은 대형 천적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지만 기생벌이나 기생파리 같은 소형의 천적들에게 가시는 그리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촘촘한 가시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산란하거나, 가시 자체를 교묘히 피해 몸체에 알을 낳는 기생 천적들 앞에서 화려한 무장은 에너지만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도구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끝검은쐐기나방 애벌레는 대형 포식자를 향한 '무력시위' 대신, 기생 천적들의 눈을 속이는 '극단적 은폐'로 전략을 수정했다. 가시를 만들고 독액을 채우는 데 소모될 막대한 에너지를 성장에 집중하여 우화 시기를 앞당기고, 몸을 최대한 납작하게 만들어 잎 뒷면의 굴곡진 공간에 완벽히 밀착함으로써 기생벌이 접근할 틈조차 주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선택을 한 애벌레는 끝검은쐐기나방만이 아니다. 꼬마얼룩무늬쐐기나방이나 대륙쐐기나방, 그리고 국내에서 비교적 최근 보고되었으나 아직 정식 국명이 정해지지 않은 Naryciodes koreana 같은 종들도 계통 대대로 내려온 전사의 독가시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이는 생물의 진화가 단순히 더 강해지는 것만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시를 포기했다는 것은 생존의 문법을 완전히 바꿨음을 의미한다.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억지력 대신, 적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무형의 은폐를 택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무기를 버린 자리에 들어선 것은 말랑한 몸체와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투명함이다.
절대 무기를 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낸 이들의 반전은, 진화가 빚어낸 가장 정교한 예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