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홍가슴개미

도시를 벗어나야만 만날 수 있는 붉은 가슴의 거인

by Eco archivist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미를 꼽으라면 단연 일본왕개미와 한국홍가슴개미 두 종이 양대 산맥을 이룬다. 도심의 화단이나 공원에서 흔히 마주치는 덩치 크고 멋진 검은 개미가 일본왕개미라면, 가슴에 매력적인 붉은빛을 품은 한국홍가슴개미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스팔트를 벗어나야 한다.

이들은 주로 썩은 나무 속이나 깊은 산속의 커다란 바위 아래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며, 일정한 습도가 유지되는 산림 지대만을 고집한다. 깊은 숲길로 걸음을 옮겨야만 비로소 이 붉은 가슴의 거인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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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홍가슴개미 여왕(左), 일본왕개미 여왕(右)


흥미로운 점은 개미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붉고 거대한 개미를 꼭 한번 키워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일본왕개미도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종이지만, 크기도 크면서 깊은 숲의 냄새를 품은 붉은 가슴의 자태는 사육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거대한 제국의 시작은 오롯이 여왕개미의 몫이다. 화려했던 비행을 마치고 짝짓기에 성공한 여왕개미는 주저 없이 날개를 떼어내고 어둡고 축축한 은신처를 찾아 들어간다.

그곳에서 홀로 낳은 알들을 정성스레 돌보는 여왕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외부 활동을 멈춘 채 오직 자신의 체내 영양분만으로 첫 일개미들이 무사히 성충이 될 때까지 굶주림을 견디며 알과 애벌레를 보살핀다.

M6109686.jpg 홀로 알을 돌보는 한국홍가슴개미 여왕


여왕의 헌신 덕분에 태어난 첫 일개미들은 곧바로 둥지를 보수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본격적인 군체 확장의 톱니바퀴를 굴린다. 군체가 성장하면 일반 일개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머리와 강력한 큰 턱을 가진 병정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방어의 주축이 된다.

어두운 둥지에 불청객이 침입하면, 가장 먼저 위협을 감지한 병정개미들은 커다란 턱과 배로 둥지의 벽을 거세게 두드리는 드러밍(Drumming) 행동을 통해 제국 전체에 다급한 진동 신호를 울린다.

진동과 함께 화학적인 적색경보도 퍼져나간다. 이들이 뿜어내는 경고 페로몬은 공기 중으로 퍼지는 속도가 다른 여러 물질의 혼합물이다. 가벼운 물질들은 동료들을 극도로 흥분시켜 돌격을 유도하고, 천천히 증발하는 무거운 물질은 전투가 끝난 뒤 개미들을 진정시키는 경보 해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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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홍가슴개미 병정


야생의 고목 속에서 벌어지던 이 비밀스러운 생태는 투명한 사육장 안에서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재현된다.

미세한 위협이나 진동이 감지될 때면, 아크릴 벽면을 타고 다다닥 거리는 다급한 드러밍 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깨고 귓가를 울린다.

그 역동적인 움직임을 숨죽여 관찰하고 있으면, 깊은 숲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요동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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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홍가슴개미 일개미


단 한 마리의 여왕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완벽한 분업 체계의 제국을 완성해 나가는 이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 어떤 생물 사육과는 다른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아직 이 숭고하고 놀라운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개미 사육에 한 번쯤 도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붉은 가슴을 가진 여왕개미 한 마리를 보살피며 나만의 작은 제국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깊은 산속의 신비로운 생태계를 내 방 안으로 들이는 가장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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