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과 함께 피어나는 아프로디테
남들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을 보며 봄의 낭만을 이야기하지만, 나에게 봄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곧 거품벌레의 시즌이자 본격적인 곤충 탐사의 계절을 알리는 반가운 전령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려한 꽃잎에 머물 때, 그 이면에서는 아름다운 곤충들이 꽃과 함께 피어나듯 태어날 준비를 한다. 이른 봄, 벚나무나 복숭아나무 같은 장미과 식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꽃눈을 부지런히 틔울 무렵이면 숲의 한구석에선 은밀한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설악거품벌레 어미가 꽃눈 겹겹이 틈새에 조심스럽게 산란해 두었던 알들은 꽃눈이 부풀어 오르면 그 틈 사이로 숨겨져 있던 생명의 기척이 비친다.
이때 꽃눈의 잎바퀴 사이에서 갓 깨어난 1령 약충들은 지체 없이 자신들만의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식물의 즙을 빨아먹고 배설물과 분비물을 섞은 뒤, 꽁무니로 공기를 불어넣어 거품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거품벌레류 약충이 이처럼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홀로 단독 생활을 하는 종들도 있지만, 설악거품벌레 약충들은 여러 마리가 한데 모여 공동의 거품 집을 짓는 쪽을 택했다.
여럿이 힘을 합쳐 더 크고 두꺼운 거품 요새를 구축함으로써 방어와 보온이라는 거품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영리한 생존 전략이다.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만들어낸 거품 덩어리는 나뭇가지에 누군가 탁하게 뱉어 놓은 침과 영락없이 닮아 있다. 거품벌레의 영명인 'spittlebug'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그야말로 '침벌레'다.
누군가 뱉어 놓은 타액을 연상시키는 축축한 외형 탓에, 사람들에게 자칫 흉측하거나 비호감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나면 불쾌함은 이내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그것은 결코 더러운 흔적이 아니라, 연약한 어린 생명들이 험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몸을 맞대고 짜낸 '공동의 지혜'이자 생존을 위한 숭고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약충들이 힘을 모아 빚어낸 이 하얀 거품은 단순한 위장막을 넘어선 최첨단 생존 요새다.
외부 기온이 급변해도 거품 내부는 약충의 성장에 최적인 25도 안팎을 유지하는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또한, 개미 같은 포식자가 발을 들이는 순간 거품은 급격히 끈적한 점성을 띠어 치명적인 덫이 된다.
항상 축축한 환경임에도 곰팡이가 슬지 않는 것은 거품 속 유익한 공생 미생물들이 철저한 항균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부의 물리적 충격까지 흡수하는 완충 기능까지 갖췄으니, 녀석들은 거품 속에 자신들만의 완벽하고도 안전한 우주를 건설한 셈이다.
이토록 끈끈한 공동의 거품 요새에서 무사히 성장한 약충은 우화 시기가 다가오면 또 다른 지혜를 발휘한다.
무리 지어 지내던 집을 떠나 각자 흩어져 자신만의 독립된 방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뿜어내는 거품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수분기를 대폭 줄이고 공기층을 풍부하게 불어넣어, 마치 탄탄한 에어돔 같은 특별한 거품을 형성한다. 이 아늑하고 보송한 에어돔 안에서 녀석들은 마지막 허물을 벗는다.
탁하고 끈적거리는 거품을 지나 맑은 공기 방울들 사이로 단단한 날개를 달고 태어나는 이 신비로운 과정은 자연스레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aphros)'에서 유래한 아프로디테가 바다의 거품 속에서 생명을 얻었듯, 거품벌레과 역시 학명인 '아프로포리데(Aphrophoridae)' 에는 '거품을 품은'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새기고 있다.
맑은 에어돔을 뚫고 나와 숲의 빛을 받으며 날개를 말리는 성충의 모습은, 혼돈 속에서 피어난 아프로디테처럼 숲 속에서 마주하는 작지만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이다.
우화를 마친 성충은 단단한 외피와 날개, 강력한 도약을 위한 뒷다리를 얻는다.
위협이 느껴지면 순식간에 튀어 올라 시야에서 사라지는 훌륭한 수비수가 되어 숲으로 향하는 것이다.
끈적한 거품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투명한 에어돔을 거쳐 자유로운 도약과 비행을 시작하는 설악거품벌레의 삶은 자연이 숨겨놓은 치밀하고도 아름다운 설계도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