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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Aug 06. 2020

5년 전의 아이돌 복고 국면

요즘 복고 트렌드와는 또 다른 모습 

요즘 대중음악계의 굵직한 트렌드에는 복고가 반드시 포함된다. 영국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에 의해 촉발된 소울 리바이벌의 열풍을 비롯해 1980년대를 전자음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던 신스팝도 재생산의 붐이 일었으며, 펑크(funk)도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Blurred Lines',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Get Lucky' 같은 히트곡 덕분에 다시금 많은 사랑을 얻고 있다. 복고는 오늘날 음악 시장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러한 경향은 우리나라 주류 음악계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이하이는 '1, 2, 3, 4'에서 더피(Duffy)로 빙의한 듯 고풍스러운 소울을, 동방신기는 '오늘밤 (Moonlight Fantasy)'에서 펑크를 들려줬다. 3년 만에 컴백한 원더걸스는 1980년대 유행한 프리스타일 음악을 시도했으며, B1A4(비원에이포)는 새 싱글 'Sweet Girl'을 통해 필리 소울을 선보인다.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장르들이 한국 아이돌 음악에서도 되살아나고 있다.


원더걸스 | 프리스타일 여신으로 변신 성공

물론 기능적으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밴드라는 전과 다른 포맷을 취함으로써 원더걸스의 컴백은 무척 돋보였다. 게다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제대로 나타난 적 없었던 프리스타일 음악을 택해 신선함도 안겼다. 또한 [Reboot]의 수록곡들이 전반적으로 말쑥한 멜로디와 탄탄한 외양을 갖췄으니 예술성도 만족하는 멋진 복귀라 할 만하다. 박진영 외에 다른 작곡가, 프로듀서가 여럿 참여했음에도 앨범의 기조가 되는 80년대 댄스 팝, 프리스타일의 통일성을 유지한 점, 멤버들이 싱어송라이터로서 역량을 드러낸 점도 특기할 성과다.


라틴 프리스타일로 부르기도 하는 프리스타일 음악은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라틴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뉴욕,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디스코, R&B,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 힙합 등 경쾌한 리듬이 특징인 장르들을 양분으로 하기에 댄서블한 성격이 기본이다. 빠른 템포와 격렬한 베이스라인을 앞세워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뉴 잭 스윙, 힙합, 유로댄스 등의 주류 시장 진입, 지역상의 한계 때문에 80년대 후반에 퇴조했다.


프리스타일 계통 최초의 히트곡으로 간주되는 섀넌(Shannon)의 'Let the Music Play', 국내 라디오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 익스포제(Exposé)의 'Point of No Return', 90년대 일본 힙합 댄스 신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뉴 슈즈(Nu Shooz)의 'I Can't Wait' 등 프리스타일 음악은 유독 업비트와 여성 보컬이 강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프리스타일 신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는 남자인 스티비 비(Stevie B)였으며, 그 시절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노래는 발라드인 'Because I Love You (The Postman Song)'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9QXQz6uE0M


B1A4 | 필리 소울이라니 놀랍도다

놀랍다. 아이돌이 이런 음악을?! B1A4는 최근 낸 여섯 번째 EP [Sweet Girl] 중 동명의 타이틀곡에서 필리 소울을 들려준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애칭 '필리'(Philly)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필리 소울은 그곳에서 탄생한 소울을 가리킨다. 소울과 펑크를 기초로 하며, 풍성한 악기 편성과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된 특징이다.


부드러운 현악기,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지는 푸근한 관악기, 날렵하지만 경솔하지 않은 리듬으로 'Sweet Girl'은 필리 소울의 규범을 분명히 좇는다. 보통 필리 소울 곡과 비교해 빠른 템포가 아이돌 그룹다운 생기를 생성하며, 필리 소울의 전형적인 편성과는 달리 전기기타 솔로 연주를 넣어 활력도 보충한다. 여기에 후렴의 가성과 스캣으로 쾌활함을 증대한다. 디테일한 손동작의 안무는 시각적 재미까지 충족한다.


국내에서 필리 소울을 시도한 아이돌은 B1A4가 처음이 아니다. 홍진영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기 전 멤버로 있었던 4인조 걸 그룹 스완의 2007년 데뷔곡 '이 노래 들으면 전화해'도 필리 소울의 특징을 어느 정도 따른다. 아이돌은 아니지만 나얼도 솔로 정규 앨범 중 'Soul Fever'에서 필리 소울의 감성을 표현한 적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W7GSJ-4ZqQ


동방신기, EXO, 소녀시대 | 펑크 맛 좀 아는구나

요즘 SM 엔터테인먼트는 펑크, 일렉트로 펑크, 부기(boogie)에 맛을 들인 듯하다. 동방신기의 '오늘밤 (Moonlight Fantasy)', 엑소(EXO)의 'Love Me Right', 보아의 'Smash', 소녀시대의 'Party', 슈퍼주니어의 '每天 (Forever with You)', 샤이니의 'Married to the Music' 등 다수의 노래가 그 장르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한때 '훅송'의 유행을 선도했던 SM은 이제 펑크 계열 음악을 사풍으로 밀고 있다.


격렬하지만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펑크는 1970년대 후반 무렵 디스코, 신스팝 등과 혼합하면서 한층 댄서블하고 세련된 사운드의 부기, 일렉트로 펑크를 탄생시켰다. 이들 장르는 하우스를 위시한 일렉트로니카나 힙합 장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최근에는 크로미오(Chromeo), 댐 펑크(Dam Funk) 같은 뮤지션들에 의해 재현되는 중이다. 명료한 신시사이저 루프, 도드라지는 베이스 연주, 디스코와 펑크에서 기인한 스트링과 브라스 섹션을 특징으로 한다.


외국에서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향유되는 비주류 스타일이 대형 기획사에 의해 아이돌 음악으로 쓰이는 현상이 신기하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과는 또 다르게 세련미와 팝 느낌을 시원하게 낸다는 점에서 구별되고 돋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Qzu7NYlZNQ


원펀치(1PUNCH) | 90년대 느낌은 오지만 애매해

힙합 듀오 원펀치는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제작했다는 사항, 90년대에 유행했던 힙합이나 댄스음악 스타일, 멤버들의 어린 나이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기대만큼은 아니다. 그때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뉴 잭 스윙, 팝 랩을 따라 한 그 시절 한국의 과도기적 댄스음악을 다시 듣는 느낌이랄까?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이미 멋진 힙합이 넘치는 상황에서 그때의 스타일을 새로운 해석 없이 복원하니 감동이 올 리 없다. 그저 "아,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에 잠시 젖을 뿐. 아무튼 원펀치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듀스라는 가마솥에 지은 언타이틀 밥 위에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 김치를 얹어 먹는 느낌이다.


멤버 원이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해 추억의 홍콩 스타 장국영을 닮은 훈훈한 외모와 뛰어난 랩 실력을 선보였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으면 원펀치는 슬그머니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 같다.


원펀치의 음악적 슬로건은 2009년에 나온 몇몇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불의 '사고 치고 싶어'와 신화의 앤디가 프로듀스한 남성 듀오 점퍼의 'Yes!'도 90년대 댄스곡을 지향한다. 안타깝게도 두 노래 모두 이렇다 할 인기는 얻지 못했다. 복고 트렌드는 돌고 돌면서 대중의 부름을 받지만 그것을 시도하는 모든 작품이 히트하지는 않음을 이들 노래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D5MjwJVts


이하이, 마마무, 스피카, 스테파니 | 복고의 중심, 소울 리바이벌

복고 하면 소울이 빠질 수 없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팔로마 페이스(Paloma Faith), 아델(Adele), 더피 등 영국 여가수들이 이끈 빈티지 사운드의 행렬은 국내에도 상륙해 그 줄을 더 길게 늘이고 있다. 더구나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주류의 가수가 이런 스타일을 소화하는 덕분에 흑인음악에 대한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뿌리는 R&B와 소울에 있음을 알린 이하이가 이 흐름에 선두가 됐으며, 걸 그룹 마마무는 약간 다른 톤으로 대열에 합류한다. 스피카는 작년 초에 발표한 'You Don't Love Me'로 소울 리바이벌에 동참했다.


얼마 전에는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스테파니가 신곡 'Prisoner'를 선보임으로써 소울 열기에 바람을 더 넣는다. 스테파니는 2012년 당시 동향에 맞춰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트랙 'Game'을 발표하며 솔로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이번에도 추세의 끈을 잡은 셈인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반듯한 선율이 장점이긴 하나 밍밍한 편곡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t4-OA6UJAhc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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