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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Nov 03. 2020

음악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장발 가수들

화제의 인물 장문복이 확 달라진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이달 9일 공개된 <프로듀스 101>의 남자 버전 홍보 영상에 담긴 그는 누가 봐도 어엿한 청년이었다. 2010년 <슈퍼스타K>를 통해 처음 시청자들과 만났을 때의 앳된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첫인상이 워낙 강렬해서였을까? 세월의 순리대로 중학생에서 성인으로 성장했을 뿐이지만 그의 변화는 괜히 신기하게 느껴진다.

훌쩍 자란 장문복을 더욱 튀어 보이도록 한 요인에는 과거와 다른 헤어스타일도 포함된다. 그는 2015년 통신사 광고와 2016년 아웃사이더의 'Become Stronger'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미 긴 머리를 선보인 바 있다. 염색에 파마까지 한 통신사 광고 속 헤어스타일은 어설픈 동네 날라리 느낌이었지만 아웃사이더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준 생머리 장발은 진지함을 풍겼다. 이때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머리 모양의 변화가 그에게 새 생명을 안겼다.


장발은 희소성이라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장발은 남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스타일이기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도움이 된다. 장문복이 만약 <슈퍼스타K> 시절처럼 여느 중학생과 다르지 않은 스포츠머리를 유지했다면 이렇게까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을 듯하다. 미소년 100명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장발의 공이 크다. 장문복처럼 여러 가수가 장발로 눈도장을 찍곤 한다.


그야말로 '여신 포스' 세븐틴 정한

근래에 긴 머리로 음악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은 세븐틴의 정한이 독보적이다. 날이 바뀌기가 무섭게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그는 남다른 머리 길이 덕에 빠르게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우지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아담한 체구 때문에 관심을 끌었다면 그는 장발로 나머지 열두 명의 멤버들보다 부각됐다. 투박하긴 해도 '세븐틴 머리 긴 애'라는 자기만의 호칭을 쉽게 얻었다.


정한은 작년 4월 첫 번째 정규 앨범을 출시하면서 단발로 머리에 변화를 줬다. 이후 그의 머리는 아주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매번 외적으로도 변신을 행하는 것이 아이돌의 숙명이겠지만 긴 머리의 그를 좋아한 팬들에게는 매우 아쉬울 소식이다. 세븐틴을 혼성 그룹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던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은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듯하다.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이발한 방예담

최근 YG 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보이 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10대 중반 안팎의 소년 일곱 명 정도로 이뤄진 이 그룹은 오는 7월 데뷔를 목표로 잡았다고 한다. 굴지의 연예기획사가 제작하는 아이돌이니 보도가 나오자마자 많은 음악팬이 뜨거운 기대감을 표시했다. 더욱이 이 그룹에 <K팝 스타> 두 번째 시즌의 준우승자 방예담이 속해 있다고 해서 관심이 증폭됐다.


방예담은 노래 실력으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머리로도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했다. 2012년 11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또래 아이들과 사뭇 다른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충분히 어필했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장발이라니, 뮤지션 느낌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머리가 차츰 짧아지면서 마지막에는 보통 헤어스타일을 갖게 됐다. 최근 공개된 프로필 사진은 그때보다 더 짧아진 상태. 방예담도 과거의 모습과 작별했다.


수난을 당한 장발의 역사

우리나라에 장발을 전파한 이는 포크 록 가수 한대수였다. '한국 최초의 히피'로 불린 그가 1960년대 후반 긴 머리를 하고 등장한 뒤 다수의 젊은이가 그처럼 머리를 길렀다. 그에게서 새로운 일탈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같은 유행을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70년대부터 단속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깊었던 탓이다. 이로써 귀를 덮은 머리를 하고 다니다가 경찰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이발을 당해야 했다. 성룡이 70년대에 한국에 체류할 때 장발 단속에 걸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록, 헤비메탈 뮤지션들이 쭉 전유하던 장발은 90년대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듀스의 이현도와 김성재 같은 이들로 인해 댄스음악을 하는 가수들에게도 전이됐다. 하지만 1994년 10월 방송사들이 '범사회적 도덕성 회복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남성의 장발, 삭발, 귀고리 착용 등을 규제함에 따라 장발 가수들은 긴 머리를 휘날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쓴 채 춤을 춰야 했다.


물론 방송사의 규제는 모든 가수에게 적용되는 것이어서 대체로 머리가 길었던 록 뮤지션들도 방송에 나가려면 머리를 단정하게 묶거나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강산에는 이 조치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며 방송 출연 거부를 선언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라며 긍정의 메시지를 전파하던 그는 강압에 영향을 받은 자발성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됐다.


015B는 그해 발표한 5집 수록곡 '바보들의 세상'에서 "귀고리와 장발과 선글라스 연예인은 출연을 못한다."라는 가사로 방송국들의 황당한 통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5집 타이틀곡은 조용필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단발머리'였다. 노래는 단발머리 여성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무리 없이 방송 전파를 탈 수 있었다. 남자의 헤어스타일에 관한 가사였다면 제재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90년대 후반, 가요계 장발의 르네상스

세월이 지나면서 방송사의 단속은 봄눈 녹듯 누그러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 솔로로 나선 이현도 등에 의해 긴 머리는 다시 주류에 진출하게 된다. 90년대 후반부터 신화의 에릭과 전진, H.O.T., 이글 파이브의 론 등 많은 아이돌 가수가 단발, 장발을 선보였다. 이 무렵 대다수 보이 밴드에 단발 이상의 긴 머리를 한 멤버가 1인 이상은 존재했을 정도로 대중음악계에서 장발은 대유행이었다.


여러 보이 밴드 가운데 엔알지와 A4가 긴 머리를 한 멤버가 많았다. 엔알지는 1998년 '사랑 만들기'와 'Messenger'로 활동할 때 김환성, 노유민, 문성훈이 단발 길이 이상의 헤어스타일을 했다. 휘성이 속해 있었던 A4는 휘성이 탈퇴한 후 2집을 출시하면서 데뷔 때보다 더 긴 머리를 흩날렸다.


현대사회에서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저항으로 비치곤 한다. 그러나 이 시기 보이 밴드의 장발은 의도하는 바가 달랐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가 아닌 만화 속 주인공처럼 꾸밈으로써 10대 소녀들의 환상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것이었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헤어스타일은 나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수단일 뿐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남자 아이돌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알록달록하게 머리를 염색하는 이는 흔하지만 긴 헤어스타일을 갖춘 가수는 얼마 없다. 때문에 장발을 하면 확실히 튀어 보이긴 한다. 바로 지금, 머리를 기르는 것이 홍보의 블루오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수에게 머리 모양은 그를 나타내는 본질이 아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띌지 몰라도, 트레이드마크가 돼 줄지는 몰라도 가수로서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실력이다.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장발 덕에 돋보인 아이돌 가수는 여럿 됐지만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는 이는 얼마 없다. 2016년 노래를 발표하며 '화제의 인물'에서 정식으로 '래퍼'가 된 장문복도 이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중이 인정하는 으뜸이 되려면 머리보다 음악성이 중요하다.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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