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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Dec 22. 2020

코로나 이후 인디 음악계와 공공기관의 역할

혹독한 한 해였다. 사회 대부분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중음악계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내내 혹한기를 겪었다. 예정된 앨범 출시나 공연을 연기하는 일이 허다했으며, 무기한 미루던 콘서트를 결국에는 취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범수와 보아, 가수로서 이립이 된 신승훈 등도 코로나 때문에 특별한 해를 기념하는 공연을 치르지 못하게 됐다. 여기저기에서 잇따른 비자발적 휴업으로 가요계에는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인디 뮤지션들의 고충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열성적인 지지자를 많이 둔 아이돌 그룹이나 경력이 오래된 가수들은 음원을 발표하면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된다. 하지만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 인디 음악가들은 음원, 음반 발매로 큰 이익을 보기 어렵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을 제외한 전업 뮤지션들은 대체로 공연을 통한 소득에 의존한다. 평소에도 무대 하나하나가 간절한데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의 강화로 한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하는 클럽들이 늘어나면서 인디 뮤지션들은 한순간에 설 자리를 잃어야 했다. 벌이의 가장 주요한 통로가 막혀 버렸으니 하루하루 벼랑 끝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무기력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예술가는 활동으로 자신을 부단히 드러내야 하는 존재다.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으면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며 대중과 만났듯 지금 시국에는 새로운 방편과 공간을 찾는 것이 인디 뮤지션들이 직면한 숙제였다.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생겨날수록 난국을 타개할 힘이 응집되며,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나오는 법이다.

창작 영역에서는 이한철이 난항 극복의 선두로 나섰다. 음악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 온 그는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음악으로 힘을 주고자 3월 자신의 대표곡 '슈퍼스타'를 동료들과 다시 불러 선보였다. 2005년 출시된 이 노래는 한 음료 광고 시엠송으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졌고, 희망적인 가사 덕분에 '국민 응원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많은 국민이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제작 방식도 코로나 국면에 어울렸다. 이한철은 이 리메이크를 '방-방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다수가 집 안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기에 방과 방을 잇는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이한철을 비롯해 가리온의 MC 메타, 크라잉넛의 박윤식, 신현희, 제이래빗의 정혜선 등 노래에 참여한 18인의 인디 뮤지션은 각자의 공간에서 연주, 혹은 보컬을 녹음한 후 파일을 공유하며 노래를 완성했다. 뮤직비디오도 각각 따로 찍은 영상을 취합해 만들었다.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비대면'을 창작 활동으로 실천한 사례다. 또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동시에 음악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돌파하는 대안을 보여 줬다.

한편 공연을 갈망한 뮤지션들은 SNS, 유튜브에서 활로를 찾았다. 짤막한 연주, 다른 가수의 노래를 커버한 영상 등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거나 근황을 전하는 용도로 쓰이던 이들 온라인 창구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차선의 공연장으로 떠올랐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과 얼굴을 마주하며 감정을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었다.


이후 인디 신에서는 SNS, 유튜브, 포털사이트의 방송 서비스 등을 통해 공연을 펼치는 일이 증가했다. 실제 현장에서 관람하는 대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컴퓨터로 공연을 보는 방식이 '뉴 노멀'로 정착한 것이다.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랩비트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같은 대형 공연도 온라인 형식으로 음악 애호가들과 만났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던 인디 음악계는 이렇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서 활력을 회복해 갔다.

마포문화재단이 올해 하반기부터 운영을 맡은 '서울독립음악창작소'도 인디 음악계가 활기를 띠는 데 기여하고 있다. 독립 음악인들의 창작 및 공연 활동을 지원하는 이곳은 각양각색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초청해 <전지적 밴드 시점>, <2020 인디 콘택트> 등의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또한 이번 달에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총 20개 팀이 출연하는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을 온라인으로 중계할 예정이다. 이승환, 크라잉넛, 이날치, 실리카겔, 세이수미 등 많은 이에게 익숙한 가수와 음악적 개성이 선명한 팀들을 두루 아우른 이 콘서트는 즐거운 연말 분위기를 그리워한 이들에게 공연 제목처럼 선물로 여겨질 듯하다. 마포문화재단과 서울독립음악창작소가 무대가 필요한 뮤지션들과 공연에 목마른 음악 팬들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공연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인디 뮤지션들로서는 제대로 된 장비와 시설을 갖춘 장소를 대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각 지역의 문화재단들이 먼저 나서서 행사를 기획하고, 무대를 공급해 주는 것이 인디 음악가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다. 공연을 통해 축적된 에너지와 기량, 자신감은 창작열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뮤지션들에게 공연을 선보일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 좋은 작품이 나오는 데 중대한 자양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기회 제공과 더불어 아티스트들과 함께 유료 공연 제작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단의 예산은 한정돼 있기에 뮤지션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사업이 지속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금 확보가 필수다. 유료 공연이 활성화된다면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뮤지션과 공연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는 지금 당장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완수해야 할 과제다.


마포문화재단 뉴스레터 12월호

http://www.mapoartcenter.or.kr/mapoArt/f/jsp/communication/article_view.jsp?idx=165&searchflag=&searchstring=&nowPageNum=1&dtl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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