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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Oct 03. 2019

1994년 추억의 가요 명반들

추억 이상의 존재감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표현이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 말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됐던 SBS <인기가요>를 스트리밍으로 내보내는 유튜브 채널에 한 시청자가 남긴 댓글에서 비롯됐다. 저 시절을 회상하며 흥겹게 노래를 감상하는 30대들이 마치 탑골공원에 모여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같아 보인다는 의미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묘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증을 유발해 많은 이를 과거의 가요계로 인도하고 있다.


저기서 해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1994년을 생각해 본다. 1994년은 우리 대중음악이 양적, 질적 성장을 모두 이룬 대표적인 순간 중 하나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약진으로 댄스음악과 힙합이 한층 확산됐고, 신성우, 와일드 로즈, 뮤턴트 등의 록 뮤지션들이 활발히 활동해 록 음악도 다채로운 국면을 나타냈다. 김건모, 룰라에 의해 레게가 인기 장르가 됐으며, 조관우의 '늪', 김현철의 '끝난 건가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같은 노래들은 젊은 청취자와 장년 음악팬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았다. 1994년은 25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근사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많이 배출한 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3집에서 전작들보다 록, 헤비메탈의 성향을 강화하면서 또 한 번 변화를 선보였다. 강한 사운드는 단순한 외양 꾸미기가 아니었다. 남북의 통일('발해를 꿈꾸며'), 대한민국 제도 교육에 대한 비판('교실 이데아'),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기인한 고통('지킬박사와 하이드') 등 유의미한 메시지를 힘 있게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장치였다. '교실 이데아' 속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가사는 그 시절 청소년들에게 가장 가깝고도 현실적인 격언이 됐다. 세 번째 앨범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혁명가가 기성사회에 날리는 통쾌한 펀치였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운 댄스 가수가 홍수를 이루던 때였지만 거기에 흡수되지 않는 이들 덕분에 시장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스케치가 그런 역할을 했다. 요즘에도 널리 애청되는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시종일관', '운명' 등이 실린 4집 <다 큰 애들 이야기>는 합창 중심의 보컬과 소소한 생활담을 기록한 가사로 자극성 강한 주류 대중음악과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여행스케치는 성부가 다른 가수들이 이루는 화음,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다룬 가사에 깃든 수수한 멋에 대해 차분히 주장했다.

무한궤도와 솔로 앨범으로 비범함을 입증한 신해철은 넥스트를 결성해 더욱 심오한 세계를 펼쳤다. '가정'에 대해 논했던 1집 <홈>에 이어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원 더 비잉>도 하나의 주제를 내세워 통일성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레시브 록과 하드록을 주메뉴로 택해 적극적인 음악 개혁을 꾀했다. 신해철이 던지는 '존재'에 관한 물음은 정밀하고도 웅장한 구성의 '껍질의 파괴', 엑스세대의 정서를 대변한 '나는 남들과 다르다', 꿈이 실존의 원동력임을 넌지시 말하는 '불멸에 관하여' 등을 통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넥스트 2집은 진중한 고민, 음악적 내실과 다양성을 모두 지닌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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