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자선 노래의 본격적인 시작
브라운관 너머의 현실은 참혹했다. 아이들은 뼈만 앙상했고, 어른들도 하나같이 생기를 잃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화면에는 울음소리가 넘쳤다. 기자는 이곳에서 20분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보도했다. 1983년 농업정책 실패로 발생한 에티오피아의 대기근은 3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 갔다.
아일랜드 록 밴드 붐타운 래츠의 밥 겔도프는 1984년 10월 에티오피아의 참상을 다룬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극심한 굶주림에 신음하는 난민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던 그는 영국 밴드 울트라복스에서 활동하는 동료 미지 유르에게 성금 모금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취지에 공감한 미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작업에 나섰다. 둘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으니 캐럴 느낌이 나는 노래가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미지가 곡을 쓰는 동안 밥은 동분서주하며 스타 동료들을 모집했다. 유명한 가수들이 함께하면 혼자 음반을 취입하는 것보다 대중의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밥의 열정 어린 요청에 스팅, 필 콜린스, 조지 마이클, 폴 영, 조디 와틀리, 보이 조지 등 당시 내로라하는 뮤지션 수십 명이 뭉쳤다.
노래에 참가한 모든 뮤지션이 밥의 숭고한 목적에 동의했을 테다. 하지만 밥이 쓴 가사는 전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유투의 리드 싱어 보노는 자신의 파트("Well tonight thank God it's them instead of you.")가 그리 탐탁지 않았다. 기아와 궁핍을 겪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은 고통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더 아프게 할 것만 같았다. 밥은 이에 대해 그들이 불행한 현실에 감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문제에 처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보노는 미묘한 차이를 받아들이고 노래를 불렀다.
1984년 12월 지원(aid) 활동을 벌이는 밴드라는 뜻의 이름 '밴드 에이드'로 발매된 자선 싱글 '두 데이 노 이츠 크리스마스?'(Do They Know It's Christmas?)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음악팬들도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걱정하고 노래의 건강한 의도에 동감한 결과였다. 이 노래가 나올 무렵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짐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노래 대신 밴드 에이드의 음반을 사 달라고 공개적으로 청원하기도 했다.
이 모습은 미국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가수이자 오랜 세월 사회 운동가로 지내 온 해리 벨라폰테는 밴드 에이드에 영감을 얻어 이듬해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 그룹을 조직했다. 그의 섭외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등 수십 명의 슈퍼스타가 응해 자선 싱글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선보였다.
이 뒤로 유명 아티스트가 대거 모인 자선 싱글이 부쩍 늘어났다. 이런 음반들은 호화로운 출연진으로 음악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자선 싱글의 가치는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어려움을 겪는 이를 돕고 사회문제를 환기하는 등 인도주의적 활동을 벌인다는 점으로 뜻깊다. 올해로 탄생 35주년을 맞이한 '두 데이 노 이츠 크리스마스?'는 음악계에 인정을 키우는 촉매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