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음악

재미, 의미를 충족한 한국 음악영화 5편

한국영화 100주년에 부쳐

by 한동윤

올해는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해였다. 1919년 단성사의 사장 박승필이 제작한 <의리적 구토>로 첫발을 뗀 우리 영화계는 이제 관객 수 1천만이 넘는 영화를 수차례 배출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뤘다. 남다른 시선과 탄탄한 연출로 외국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도 다수다. 특히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여러 시상식을 휩쓸어 100주년을 더욱 뜻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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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영우, 방준석, 조성우

긴 역사를 축적하는 동안 영화음악 산업도 확장, 발전했다. 1948년 현인이 주연하고 황문평이 음악을 담당한 최초의 음악영화 <푸른 언덕>이 개봉한 이래 음악영화의 양도 점차 늘어났다. 1990년대부터는 조성우, 이동준, 원일, 방준석 같은 음악 감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한국 영화에 스코어가 보편화됐다. <접속>,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공동경비구역 JSA> 등에 참여한 조영욱은 탁월한 선곡으로 명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올해로 열다섯 살이 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한국 영화 시장, 영화음악이 번성했음을 일러 준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며 영화음악의 지난 면면을 훑고 싶지만 한 회의 글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대신 아쉬운 대로 음악 장르, 또는 스타일을 대략적으로 나눠 재미나 의미를 충족한 영화음악 다섯 편을 소개해 본다.


변산 | 힙합이 주메뉴가 된 첫 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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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봉한 <변산>의 성적은 박정민이 연기한 주인공 학수의 삶처럼 어둡기만 했다. 고작 49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고 스크린에서 내려갔다. 이전에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 3부작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였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합을 소재로 삼았으나 <변산>은 그 힘을 입지 못했다. 그래도 2012년 개봉한 <투 올드 힙합 키드> 같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장편 상업영화에 힙합이 담겼다는 사실은 특별하다고 할 만하다.


박정민은 이준익 감독의 2016년 영화 <동주> 쫑파티 때 랩을 선보인 것이 계기가 돼 <변산>의 주인공으로 뽑혔다. 확실히 그때 어설프게 랩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운드트랙 앨범을 들으면 웬만한 프로페셔널 래퍼 못지않은 재능을 지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도 출연한 TBNY 출신의 얀키가 지도해 준 덕분이겠지만 래핑에 소질이 부족했다면 이렇게 번듯하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홉 편의 수록곡 가사도 거의 다 박정민이 직접 썼다. 이 역량과 노력이 다음에는 빛을 보기를 소망한다.


신라의 달밤 | 언더그라운드 신성들이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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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주연의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은 외양부터 그야말로 음악적이다. 현인이 1949년에 취입한 동명의 노래를 제목으로 내건 까닭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최기동이 수학여행에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부르는 장면을 더 또렷하게 기억할 듯하다. '그대에게'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세상에 나온 뒤로 젊은 세대의 애청곡으로 자리매김한 덕분이다. 이 장면에서 최기동이 내보인 카리스마도 한몫했다.


영화에는 노래가 얼마 나오지 않지만 사운드트랙 앨범은 2CD로 제작됐을 만큼 무척 풍성하다. 레이지 본, 크라잉넛, 불독 맨션, CB Mass, 부산의 첫 힙합 크루 BBF 등 2000년대를 전후해 인디 신에서 이름을 날린 뮤지션들이 참여해 쾌활함을 이루고 있다. 컬트의 리드 싱어 손정한이 컬트빌리라는 이름으로 녹음한 '카리스마'는 흥겨운 리듬, 밝은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이지 본의 '모르겠어요'는 비보이 팀 리버스를 다룬 경인방송(iTV)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리얼 드라마 댄스불패>에 오프닝 곡으로 쓰여서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쎄시봉 | 곱고 수수한 옛 포크 음악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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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힘은 강했다. 2010년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등 흘러간 노년의 가수들이 갑자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이들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해 과거에 겪은 재미있는 일화들과 아름다운 하모니의 노래를 들려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이 젊은 시절에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 감상실 <세시봉>도 또 한 번 널리 알려졌다. 댄스음악의 만연에서 발생한 피로감을 편안한 분위기, 부드러운 선율의 포크 음악이 누그러뜨려 줘 세시봉 멤버들이 다시 인기를 얻게 됐다.


이 열풍은 영화 <쎄시봉> 제작으로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음악팬들의 성원은 극장가에 오롯이 도달하지 못했다. 영화는 170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1960, 70년대에 사랑받은 포크 음악을 접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주연을 맡은 강하늘과 조복래의 빼어난 가창은 영화를 한층 준수하게 만들어 줬다.


고고70 | 기운찬 솔뮤직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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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꿈을 좇아 힘차게 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이 열기를 생성한다. 패기와 만용이 뒤엉키고, 때로는 인물들이 격하게 대립해서 후끈함은 후반으로 갈수록 거세진다. 주인공들의 중심 무대인 클럽에도 붉은 조명이 가득해 체감 온도는 더 올라간다. 실존했던 밴드 데블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2008년 영화 <고고70>은 시종 맹렬하다.


주인공들의 원기 충만한 공연은 영화를 더욱 후끈거리게 한다. 샘 앤드 데이브(Sam & Dave)의 'Soul Man', 윌슨 피켓(Wilson Pickett)의 'Mustang Sally'와 'Land of a Thousand Dances' 등 1960년대 솔뮤직, 리듬앤드블루스 명곡들로 생동감이 넘친다. 방준석이 영화를 위해 만든 'U Got Me Bad'와 'Funky Tone'도 경쾌함을 보조한다. 데블스의 리드 싱어를 연기한 조승우의 빼어난 가창력 덕에 노래들이 한층 힘 있게 다가온다.


정글 스토리 | 현대 음악영화의 본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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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이 각본을 쓰고 윤도현이 주연한 1996년 영화 <정글스토리>는 음악과 주인공의 예술 활동에 초점을 맞춘 음악영화라는 사항 때문에 특별하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시시하다 못해 주인공 도현의 마지막 공연처럼 휑했다. 겨우 6,600여 명이 극장을 찾았을 뿐이다. 쫄딱 망한 영화와 달리 윤도현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록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인공은 윤도현이지만 사운드트랙은 신해철의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윤도현이 당시 거의 무명이었기에 그가 노래를 불렀다면 사운드트랙 앨범도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자그마치 50만 장 넘게 팔렸다.


앨범의 성공을 이끈 주된 요인은 신해철에 대한 음악팬들의 신뢰일 것이다. 데뷔 이래 작품성이 탄탄한 노래들을 들려줬으니 영화는 보지 않더라도 음반을 사는 사람은 많았다.


음반은 역시 괜찮았다. 전자음악과 인더스트리얼 록의 인자를 버무린 '내 마음은 황무지', 오페라풍의 코러스로 웅장함을 배가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절망에 관하여', 댄스 록과 재즈 록을 접목한 '아주 가끔은', 후련한 하드록 '백수가(白手歌)' 등 근사한 노래들이 마련돼 있다. 혹자는 백화점 같은 구성이라고 트집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양식이 혼재하는 앨범은 삶과 이상이라는 정글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주인공의 처지를 소리로 나타내 주는 듯했다.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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