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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17. 2021

과학자의 사고법

  과학자는 세상을 어떻게 볼까? 물리학자는 음악을 들으면서 악기마다 주파수를 분석할까? 생물학자는 반려견을 쓰다듬을 때도 진화를 생각할까? 과학자라고 해서 일상 생활이 특별하진 않지만, 가끔은 저런 질문을 따져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는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에 대해 답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런 기사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종종 보도된다. 이 기사들은 연구의 결론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어떤 실험을 거쳐 결론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려면 논문을 찾아봐야 한다. 그래서 데이터를 얻은 방법을 확인하고, 그 결과로 모차르트 음악이 스트레스 감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걸 알게 된다. 반려견 연구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언론에서도 반려동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기사와 논문이 자주 소개된다. 과학자들도 이 기사들을 흥미롭게 보는데, 좀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고 기사에서 인용된 논문을 직접 찾아본다. 그래서 과학자는 개가 언제 어떻게 인간에게 길들여 함께 살게 되었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한다. 과학자도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과학자는 앞선 연구자의 지혜를 따르면서도 질문한다. 실험은 여러 과정들이 연속적으로 수행되는 작업이다. 매 작업마다 달성하려는 작은 목표가 있으며, 과학자는 작은 목표들을 통과하면서 복잡할 실험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그 목표는 드릴을 이용해 슬라이드에 구멍을 뚫는 것부터, 세포 배양을 위해 배양액을 비율에 맞춰 적절히 조합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과학자라고 해서 매 단계마다 새롭고 창의적인 실험 방법을 고안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앞선 연구자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 작업 절차인 프로토콜(protocol)을 따르면서 작은 목표들을 큰 실수 없이 달성한다. 

  하지만 프로토콜은 프로토콜일 뿐이다. 표준 절차를 만든 연구자와 지금 실험하는 연구자 사이에는 시간도 다르고, 연구실 환경도 다르고, 도구와 시약도 다르다. 프로토콜에는 전체 절차를 설명하는 대략적인 정보만 담겨있다. 그래서 과학자는 프로토콜을 자신의 연구실 환경과 보유하고 있는 시약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석한다. 제품번호까지 같은 시약과 초 단위로 시간을 재가면서 수행해도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실험 과학자는 앞선 연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든 절차에 ‘이 단계에서 왜 이 작업을 했는지’ 질문한다. 연구자가 생각하기에 지금 실험에서 필요하지 않는 절차라면 그것을 빼야 한다. 또는 실험에 필요하다면 새로운 과정을 추가하거나, 시간을 늘리거나, 시약의 농도를 높여야 한다. 

  과학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업이다.   ‘왜’ 질문의 범위는 넓다. 작게는 원자보다 작은 물질의 운동을 설명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왜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지부터, 크게는 우주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 질문을 할 수 있다. 실험실에 있는 물리학자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질문한다.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선배 연구자들이 고생하면서 만든 표준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웬만한 결과를 실수 없이 얻을 수 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도 거의 동일한 절차를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적용해도 낡은 방식이 아니다. 그래도 실험하는 사람은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까? 이 데이터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정보는 더 없을까?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하며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배운다. 과학자는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앞선 자의 지혜를 빌리면서도 질문하는 태도는 과학자만의 사고법은 아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도 선행 연구 결과를 딛고 서면서 동시에 이 결과를 재검토한다. ‘현대’ 예술에서도 예술사에 기록된 작가들을 넘어서기 위해 질문하고 작업한다. 그래도 뉴턴이 언급했던 거인의 어깨처럼, 과학에서 이런 생각과 태도가 두드러진다. 과학자는 잘 알려진 표준 절차도 의심하고,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과연 그런지 따져본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학부과정까지 교과서로 과학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과 지식을 잘 외어서 학습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 지식을 만들어내는 실험실에서 교과서는 이미 정립된 지식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표준 절차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과정일 뿐 지금 여기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질문하고, 표준 절차를 의심하는 게 연구 현장이다. 교과서를 의심하라! 그 의심에서 새로운 연구 질문을 찾을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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