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턴부터 시작하는 당직 라이프

졸업 후 당에 취직한 나의 인턴십 회고록

2019년 겨울, 나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인턴십’으로 갈 곳을 찾아야 했다. 인턴십은 3개월간 학교가 아닌 다른 단체나 기관에 출퇴근하며, 졸업 전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를 경험하는 교육과정의 일부였다. 그러던 중 기본소득당이란 정당이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는데 곧 있으면 다가올 졸업이 막막하게 느껴지던 나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처음 접한 개념이었지만 기본소득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실행하고, 실패해보기 위한 실질적인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학교 교육과정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3개월의 인턴십을 기본소득당에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으니 행동은 빨랐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전화를 걸어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미팅을 진행했다. 고맙게도 기본소득당에서는 흔쾌히 인턴십 제안을 받아주었고, 나는 2020년 1월부터 2020년 총선이 있었던 4월까지 기본소득당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밥을 먹자!와 설거지 승부

기본소득당의 창당대회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1월 15일, 첫 출근을 했다. 고대하던 첫 출근이었지만 현실의 첫 출근은 낯설고, 익숙한 학교 친구들이 그립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와중에 한 줄기 빛은 점심시간이었다.


구내식당이나 근처에 저렴한 밥집이 많지 않아서 ‘밥을 먹자!’라는 식사 모임을 따로 운영했는데, 즉석밥에 반찬을 나눠먹는 방식이었다. 각자 집에서 싸오거나 반찬 가게에서 산 반찬을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식사 때마다 덜어서 먹곤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확산되기 전까지 ‘밥을 먹자!’는 수다의 장이었고, 이 공간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매번 점심시간이 끝나면 중요한 이벤트가 열렸는데, 바로 설거지 내기 가위바위보였다. 열댓 명 중 한 명인데 설마 걸리겠어? 하고 편하게 시작했다가, 최후의 2인으로 남게 되면 쫄깃해지는 한판 승부!


2020년 1월 설거지 내기 가위바위보의 현장. 나의  승률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점심 먹고 설거지 가위바위보를 하던 기억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은 정당과 즉석밥

인턴십을 진행하며 즉석밥과 반찬을 사 먹는 게 꼭 좋아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새로운 사회의 상식’으로 만들기 위해 모였고, 그들이 모으려는 것은 마음과 시간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자원이기도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한 명 두 명 도시락을 싸오다가 즉석밥과 반찬을 함께 먹게 되었던 것이었다.


정당을 운영하고 선거를 치르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거대 정당의 경우 선거 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선거가 끝나면 다시 돌려받지만, 기본소득당과 같이 작은 정당은 후보 등록을 위한 기탁금 마련도 쉽지 않고, 선거 현수막 게첩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선거 현수막을 게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본소득당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은 기본소득당에 적응한 뒤에도 나의 인턴십 기간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2020년 4월, 은평(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기본소득당 기호 7번 신민주 후보의 선거운동 사진.

이 질문이 생기고서는 ‘기본소득당 사람들’을 ‘그들’이 아닌 ‘우리’로 바라보고 생각해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하게 되면서 나는 기본소득당을 나의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당으로 여기게 되었다.


당시 은평(을)에 출마했던 신민주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선거에 함께했다. 선거운동 기간은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민들과 만나는 기회임과 동시에 다른 동료들을 보다 깊게 알게 되는 계기였다. 기본소득당에 모인 사람들이 기본소득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나누는 기본소득이 기반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이 당직 라이프

선거가 끝나고, 나의 인턴십도 끝났다. 3개월 간 압축적이고 짧은 경험이었지만, 나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 다시 기본소득당에 돌아와 활동할 만큼 말이다. 이제 인턴이 아니라 기본소득당의 조직국장과 청소년 의제기구인 청소년인권 특별위원회의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을 넘게 보냈던, 익숙하고 편안한 시골마을이 아닌, 매일 출퇴근 때면 미어터지는 여의도와 정신 없는 서울살이에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직 ‘내가 활동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라고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조금 뭉뚱그려본다면 기본소득이 좋아서, 누구에게나 별다른 이유없이 그저 ‘나의 것’이기에 조금의 여유를 주는 기본소득이 좋아서 여기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 생기면 사라지는 거야?”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이 실현되어도 더 정의롭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그다음 스텝을 계속 고민하는 공간일 테니까.




한강|기본소득당 조직국장
기본소득당 입사 7개월차.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적당히 일하고 더 많이 노는 삶이 꿈.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의 권리가 있듯이,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을 함께 이뤄낼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민, 유학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