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BX(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무엇이 다를까?
2020년 4월 15일, 창당한 지 채 100일이 안 된 기본소득당은 용혜인 대표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원내정당으로 거듭난다. 창당기에 해당하는 ‘기본소득당 시즌 1’을 마치고 신지혜 대표를 상임대표, 용혜인 의원을 원내대표로 ‘기본소득당 시즌 2’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개편을 준비하는데, 그중 하나가 당 브랜드 로고 리뉴얼이었다.
창당준비위원회 시절부터 사용해온 로고와 컬러에는 기본소득당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와 기본소득당을 만들어 온 구성원들의 생각이 잘 반영되어 있었고, 당 외부의 반응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확장성과 기성 정당들 사이에서의 차별성 등 새로운 BX(브랜드 경험) 디자인의 필요성이 기본소득당 시즌 2를 기점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정당 로고의 조건
기본소득당에 합류한 지 3개월 만에 로고 리뉴얼을 맡게 되면서 정당으로서의 브랜드 경험은 무엇인가 고민해야 했다. 영리 기업, 비영리 단체, 사회적 기업 등 다른 분야의 브랜드 경험과는 다른 정당만의 조건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국내 정당의 브랜딩과 상대적으로 정당의 역사가 긴 유럽과 북미의 정당의 브랜드 경험을 함께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다고 했을 때 고려하는 핵심가치(Core-Value), 아이덴티티 디자인(Identity Design), 컬러(Color),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등은 정당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고, 이런 경험을 응축시킨 얼굴인 로고를 디자인할 때도 고려해야 했다. 그런데 정당 로고를 디자인할 때 다른 섹터의 로고보다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사회당 로고를 디자인한 ‘니키 고니센(Nikki Gonnissen)’에 의하면 모든 로고가 마찬가지이지만, 정당의 로고는 확실히 명쾌하고 메시지가 눈에 잘 들어와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담기보다는 한 번만 봐도 기억나는 선명한 색상과 형태 그리고 직관적이면서 간결한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리서치한 대부분의 국내외 정당들도 이를 잘 지키며 강렬한 원색 컬러와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심벌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를 정당 브랜딩 전반에 잘 녹여내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정당의 경우에는 해외정당들에 비해 디자인 애플리케이션에서 그 선명성이 조금 옅어진다. 추측건대,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브랜딩 일관성이 다소 떨어지고 정당 로고와 브랜드 경험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As-is*, 로고의 선명성과 확장성
다른 국내 정당에 비해 기존의 기본소득당 로고와 애플리케이션은 생각보다 브랜딩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온라인으로 창당한 정당답게 온라인에 적합한, 원색적이지 않고 트렌디한 컬러와 일러스트 등이 2030이 주류였던 당원들에게 호감으로 다가왔다.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되었고, 그 열망이 기본소득당의 독특한 의제와 기성 정당과는 다른 ‘플랫폼 서비스’스러운 색채로 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As-is, To-be 분석 : 현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의 상황(As-is)’을 인식하고 현재의 상황과 ‘이상적인 지향점(To-be)’을 일치시키기 위한 일련의 전략적 사고방식
그런데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로고는 확장성과 선명성에서 몇 가지 개선하면 좋을 점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컬러였다. 웹을 기반으로 제작되다 보니 실제 출력했을 때 웹에서 보는 것과 색이 달랐고, 심지어는 출력물에 종류에 따라서도 색이 달랐다. 어떤 때는 주황색(국민의당이나 진보당의 이전 로고와 비슷한 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핫핑크(당시 미래통합당과 비슷한 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컨트롤이 어렵고 다른 당과의 구분이 어려운 주조색 ‘코랄 핑크’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는 로고타입의 확장성 개선이었다. 불규칙성이 강한 형태를 가진 기존 로고타입은 볼드한 고딕체와 잘 어울리지 않았고, 전문적인 느낌보다는 캐주얼한 느낌을 주었다. 즉, 정돈되지 않은 팬시한 폰트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어조의 메시지와 함께 사용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고 함께 맞춰서 사용할 만한 폰트가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한국 정당에서 자주 쓰는 세로 쓰기를 했을 때 정렬이 어렵기도 했다.
To-be, 기본소득당의 브랜드 경험
[그대로 가져갈 것] 쉼표, 보조색(컬러 조합), 핵심가치(부분)
[개선할 것] 로고타입, 주조색, 핵심가치, 타이포그래피
새로운 로고와 브랜드 경험을 위해서 가장 먼저 구성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브랜드 경험 디자인의 근거가 될 부분이라 꽤 공을 들였고, 그렇게 기본소득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핵심가치(Core-Value)를 설정했다. Support(지지하는), Open(누구에게나 열린), 그리고 Margin(여유)였다.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주조색이었다. 미국의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미국의 상징인 블루와 레드, 그리고 별을 똑같이 사용하고 심벌만 코끼리와 당나귀로 서로 다르다. 그런데 미국 국민들은 로고와 관계없이 민주당의 색을 파란색, 공화당의 색을 빨간색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만큼 색은 정당을 인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셈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국내 원내 정당이 사용하고 있는 색은 민주당이 파란색, 국민의힘 빨간색, 정의당 노란색, 국민의당 주황색, 시대전환 보라색, 열린민주당이 파란색+노란색이었다. 원외 정당에서는 녹색(녹색당, 민생당 등)을 사용하고 있었고, 남는 색 중에 선택지가 넓지는 않았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컬러는 보라색과 검은색이었다.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정당이기 때문에 보라색을 고려하였으나 여성의당과 시대전환이 이미 사용하고 있어 목록에서 제외됐다. 검은색은 어두운 느낌을 주고, 무소속의 느낌이 강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원내정당에서 사용하지 않는 녹색 계열로 방향을 정한 뒤, 여러 IT스타트업에서 브랜드 컬러로 사용하고 있고 전부터 보조색으로 써왔던 민트색으로 결정했다. 기존 브랜딩에서 사용하던 컬러를 보조색으로 가져와 각각 ‘베이직 민트 그린’(주조색), ‘베이직 네이비 블랙’, ‘베이직 코랄 핑크’, ‘베이직 베이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컬러 팔레트(Color Palette)를 구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로고타입을 더했다. 로고타입의 형태를 생각할 때 먼저 당시에 현수막이나 웹상에 메시지를 낼 때 가장 많이 사용하던 ‘HG꼬딕씨’ 폰트에 어울리면서 핵심가치 세 가지를 기본으로 온라인에서 창당했고, MZ세대에 익숙한 IT 기반 정당을 표방한다는 뜻에서 키보드의 키캡 형태를 살린 총 5글자의 기본소득당의 로고타입을 디자인했다. 세로 쓰기와 2줄 쓰기(정방형) 배치를 포함해 여러 가지 배열도 고려했다.
하지만 로고타입과 함께 만들어졌던 쉼표 심벌 로고는 타입페이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여백이 많다는 의견과 함께 원에 가까운 형태로 수정되었다. 두 개의 쉼표를 겹쳐 리본처럼 만든 형태로 굵기와 비율을 로고타입과 함께 조정하고 추가로 기본소득당의 ‘당’ 글자의 ‘ㅇ’ 부분에 쉼표 심벌이 포함되는 정방형 로고까지 더해져 현재의 로고가 완성됐다. 새로운 심볼 로고 타입 소개영상(클릭)
애플리케이션이 주는 고민
우리에게 맞는 가장 이상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찾기 위해선 실물을 제작해보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을 비롯해 많은 인적·물적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소득당은 소수정당으로 국회의원 1명 분의 국고보조금과 우리를 지지해주는 분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그래서 일체의 영리 활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작-개선-피드백의 순환을 통한 이상적인 브랜드 경험을 완성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기본소득당의 로고 브랜딩 작업을 마무리한 지 어느덧 1년이 흐르고, 그동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르며 여러 홍보물들이 출력되고 온라인에서 퍼블리싱됐다. 정당에게 선거는 존재의 이유이자 명절 대목처럼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시간인 동시에 우리의 브랜딩을 적용할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우리는 조금 더 정리된 브랜딩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당 브랜드는 계속 진화중
하지만 브랜드는 계속 진화한다.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의 구성원과 지지자의 생각이 바로 기본소득당 브랜드라고 한다면 일련의 사건을 통하거나 시간이 흐름으로써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앞으로 기본소득당이 더 많은 지지자를 얻고 더 많은 정치인을 배출해내는 정당으로 성장한다면, 그땐 거기에 맞는 브랜드 경험이 아주 급격히 변할지도 모른다. 창당할 때 로고가 지금의 로고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브랜딩도 최종 버전 혹은 완성 버전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는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