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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너두! 보도자료 쓸 수 있어

‘보도되는’ 브리핑과 보도자료의 비밀

이번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기본소득당 대변인들은 매일 브리핑과 보도자료를 각각 3개씩 써냈다. ‘국회 출입기자들이 모여있는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하니 보도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우리가 발표하거나 발송한 내용 중 보도된 것은 10개 이하였다. 그때 알았다! ‘야 나두’ 보도자료를 쓸 수 있지만 ‘야 너두’ 보도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본소득당 보도자료 작성 양식 이미지. 제목 란에 "보도자료 아무럿캐나 써도 될까?"를 비롯한 '보도자료 잘 쓰는 법' 홍보 문구가 들어가 있다.


기자가 클릭하고 싶은
보도자료 제목 짓기

기자도 사람이라 노잼보다는 유잼에 끌린다. 반복되는 ‘무보도 참사’를 겪은 후, 보도자료 제목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기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도자료 제목은 딱 한 가지의 주장을 간결하게 담고 핵심을 찌르는 문장이 좋다. 기자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보도자료를 받는다. 당연히 하나하나 다 읽기엔 시간이 모자라다. 보도자료 홍수 속에 클릭을 유도하는 보도자료 제목은 정곡을 찌르되 어느 정도 자극적인 문장일 수밖에 없다. 보도되지 않은(...) 보도자료와 브리핑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브리핑] 신민주 대변인, 신림동 사건 강간 미수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피해자 관점을 존중하는 법 개정이 ..


2020년 6월 25일에 쓴 보도자료 제목이다. 심각하고 분노스러운 사건이었는데 제목만 보면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다. 스토킹방지법이 필요하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고, 최협의설* 폐기도 얘기하고 싶고, 판사도 규탄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섞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제목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너무 긴 제목이라 한 줄에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차라리 결론을 하나로 통일하는 편이 나았다.

*최협의설 : 형법상 강간·추행이 인정되려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여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해석하는 것


만약 지금 다시 브리핑을 한다면 “신림동 스토킹 무죄 선고. 판사라니, 가해자인 줄”이라는 제목을 검토해볼 것 같다. 보통 보도자료 제목 바로 아래에 핵심 요약된 세 줄의 문장을 작성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세 줄엔 다음과 같이 주요 인물의 이름과 메시지를 인용 투로 꼭 포함하는 것이 좋다.

“신림동 스토킹 무죄 선고. 판사라니, 가해자인 줄”

- 신지혜 대표, “스토킹처벌법 없는 한국 현실이 낳은 참사”


첫 줄은 용건만 간단히,
두괄식 쓰기

흥미로운 제목으로 기자의 클릭을 유도했다면, 읽게 만드는 것이 그다음 목표이다. 지금 당장 기사 중 하나를 선택해 첫 문장을 읽어보자. <조선일보> 기사 “완벽한 변장에 경찰도 속았다, 빈집털이 백인의 반전”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백인으로 분장해 30여 건의 절도를 저지른 미국의 30대 흑인 남성이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한 줄만 읽어도 무슨 내용의 기사인지 알 수 있다. 아래 브리핑 보도자료와 비교해보자.

 

[브리핑] 신민주 대변인, MBC '100분 토론' 진성준 의원의 발언에 대한 입장. 첫 문단이 캡처되어 있다.


한 문단을 통으로 읽어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당연하다. 이 브리핑의 결론은 제일 마지막 문단에 위치해있다. 배경을 설명하는 데 첫 문단을 다 사용한 건데, 당시 진성준 의원이 한 말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되었기 때문에 기자들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브리핑이 아닌 보도자료도 마찬가지이다. 첫 줄은 무조건 용건만, 즉 결론만 간단히. 다시 브리핑을 한다면 첫 줄을 이렇게 바꿀 것 같다.

진성준 의원의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발언은 민주당의 수박 겉핥기식 부동산 대책의 한계를 폭로한다. 이제 토지보유세 도입으로 근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단익선(短短益善),
영업, 과거형 쓰기

그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 바로 단단익선의 원칙과 비유 사용이다. 관심을 끄는 제목과 허를 찌르는(!) 첫 줄을 썼다 해도 보도자료가 4장이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보도자료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단, 비유적 표현은 예외다. 좋은 비유를 꼭 보도자료 제목이나 내용에 넣자. 이때 좋은 비유는 복잡한 사안을 일상적 표현으로 바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해당 사안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해준다. 일례로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반대하는 워딩으로 탄생한 “국민은 인형뽑기 속 인형이 아니다”라는 비유는 수많은 기사에서 회자되었다.


첫 문단만큼 마지막 문단도 중요하다.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서 마지막 문단까지 ‘읽히는 기사’를 써냈다는 것은 꽤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보도자료를 맨 마지막 문단까지 읽은 기자는 아마도 당신이 보도자료로 알린 입장이나 사건에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해야할 것은 영업이다. “이번 보도자료가 좋았다면 이것도 더 알아보세요!”라고 당당하게. 맨 마지막 문단에는 보도자료와 관련된 후속 계획을 첨부하거나, 보도자료와 관련된 과거의 행보를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예컨대 보도자료 잘 쓰는 법에 대한 강의를 개최했다는 보도자료를 쓴다면 맨 마지막 문단에 “한편, 곽두팔 대변인은 23일, <야너두! 보도자료 쓸 수 있어>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와 같은 영업 멘트를 집어넣을 수 있겠다.


또한, 모든 보도자료는 ‘보도를 위한 자료’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설령 내일 진행될 일정에 관한 보도자료를 오늘 써서 오늘 발송한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문장은 과거형 내지 현재형이어야 한다. 예컨대 “내일 곽두팔 대변인은 <야너두! 보도자료 쓸 수 있어>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곽두팔 대변인은 <야너두! 보도자료 쓸 수 있어>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사람이 보도자료를 잘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쓰는 것이 좋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시각에 가장 보기 좋은 보도자료를 뿌리는 것을 잊지 말자.


취재요청서와 브리핑

기자들이 기자회견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고, 취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보도자료가 아닌 취재요청서를 뿌려보자. 취재요청서도 근본적으로는 보도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전에 정중하게 취재를 부탁하기 위해 쓰는 문서다. 각 단체와 정당별로 스타일 차이는 있겠지만, 제법 많은 곳에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와 같은 인사를 첫 인사로 넣고 있다. 취재요청서는 아주 자세한 내용을 담기 보다는 행사의 취지와 참석 인원, 그 외 기자가 관심 가질 만한 사항을 위주로 적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이런 방식의 브리핑도 가능하다.     


    

[브리핑] 김종인 비대위원장 "돈에 맛 든 국민 안 돼" 망언에 답함 : "권력에 맛 든 국민의힘 안 돼" 전문. 2~4줄짜리 문단 네 개로 이루어져 있다.


첫 줄이 다소 약하기는 하지만 길이가 짧고, 적절한 비유와 비판을 가미한 브리핑이었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보도되는’ 보도자료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글이 절실하게 보도가 필요한 수많은 곳들에 가닿아 ‘야 너두’ 보도되는 브리핑/보도자료를 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dited by 대변인 신민주

Photo/Image by 기본소득당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의 권리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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