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 ‘나의 아저씨’의 강윤희를 만나면

모든 것을 갖고 사는 여자는 없다?

by 박세미

어두운 서점 안, 책장 앞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이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심하게 흔들린다. 『82년생 김지영』이다. 5분쯤 흘렀을까. 김지영이 소리 없이 책 밖으로 나온다. 책 밖의 세상은 자신이 살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익숙함 사이로 설렘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서점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너무 까매져서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무작정 걸었다. 스치는 바람결 하나도 자신을 위해 적당히 불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밤새 걸었다. 기분 좋은 걸음이다.


김지영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커피숍에 들어섰다. 아직 강윤희는 오지 않았다. 커피숍 구석 자리 창가에 자리를 잡은 김지영은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정확히 약속시간에 강윤희는 커피숍에 들어섰다. 그녀는 긴 웨이브 머리를 풀어헤치고, 단정한 투피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었다. 그녀는 왼팔에 시계도 찼고, 가방도 걸쳐 놓았고, 서류도 힘겹게 끼고 있었다. 그녀의 왼팔이 버거워 보였다. 강윤희는 왼손으로 간신히 오른손에 들린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김지영이 어색하게 오른손으로 전화를 받고는 수줍게 왼팔을 반쯤 펴면서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강윤희도 힘겨운 왼팔로 엉거주춤하게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늉을 했다.


김지영 앞에는 아이스 라테가 그리고 강윤희 앞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있다. 강윤희가 시원하게 커피 한 모금을 하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영 씨,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뭘요... 저도 언니 이야기 재미있게 봤어요. 참, 언니라고 해도 되지요?”

“그럼요. 제가 지영 씨보다 서너 살 더 많은 것 같아요.”

“네. 그럼, 언니라고 할게요.”


김지영과 강윤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창밖을 한 번 내다봤다.


“그런데 왜 제가 만나고 싶었어요?”


강윤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언니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요. 저랑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비슷한 면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제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언니를 만나고 나면 제가 살아갈 힘이 생길 것 같기도 해서요... 제가 제 마음을 털어놓을 곳만 있어도 다시 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강윤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얼음들 사이로 커피의 자국만이 흐릿하게 남을 때까지 커피만 마셨다. 그리고는 한 마디 툭 던졌다.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강윤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지영은 서둘러 말을 낚아챘다.


“아니에요. 언니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니도 아시겠지만, 여자가 사법고시를 본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언니는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시험을 봤잖아요.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강윤희는 김지영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얼음만 남은 커피 잔을 바라보며, 빨대로 얼음을 휘휘 젓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애 낳고 다시 일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실, 아이를 낳기 전의 직장생활도 쉽지는 않았지만요...”


강윤희가 무겁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김지영의 어리숙한 눈을 바라보았다.


“저도 힘들었어요. 보셨다니 다 알고 계시겠네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참, TV에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자세히 안 나오긴 했어요. 그저, 결혼해서 사법고시 합격하고, 변호사 되고, 바람나고, 그래서 남편한테 미안해하고... 뭐 대충 제 얘기는... 생각해 보니, 그런 이야기만 나오긴 했네요.”

“아니에요. 저는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였어요.”

“그래요?”

“결혼하면 여자는 다 똑같아지는 것 같아서요. 사는 집만 다르지, 그 집안에서는 다 똑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사법고시를 하실 생각을 했어요?”


강윤희는 김지영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살려고요... 내가 살려고 했어요.”


강윤희가 땅을 쳐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김지영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은 민망한 마음에 커피를 마셨다. 강윤희를 만난 지 한참 만에 마신 커피다. 얼음이 제법 녹은 그 커피는 시원하긴 했지만 느끼하면서도 싱거웠다. 그런 김지영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강윤희가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뗐다.


“나는 사랑만 보고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그냥 착하기만 한 남편이랑, 인간적인 시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는 사법고시가 조금은 쉬울 것 같더라고요. 사법고시 정도는 되어야 내가 온전히 나를 쏟아부어 그 현실에서 벗어나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보장된 내 미래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했어요. 사법고시. 붙어서 다행이었지요. 다른 대안도 없었는데...”

“그렇군요. 저는 언니가 자기 일도 있고, 시댁 일에도 경제적으로 도움도 주시고, 시어머니도 언니를 막 위해주고 하는 게 부럽더라고요. 언니는 언니가 여자라고 못하는 게 없으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우리 남편은 어떻던가요? 지영 씨 보기에...”

“네?”

“내가 우리 남편이랑 사는 것은 부럽지 않던가요?”


김지영은 갑작스러운 강윤희의 질문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춤을 추듯이 커피 잔을 조용히 두드렸다. 강윤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 안에서 조심스럽게 소리를 다듬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당황스러움이 느껴졌고, 작았다.


“아뇨, 아뇨... 언니 남편 분도 착하시고, 좋아 보였어요.”


강윤희는 그런 모습의 김지영이 밉지 않고, 귀여웠다.


“그렇죠? 우리 신랑 착해요. 맞아요. 착해요... 그래서 ‘나의 아저씨’잖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나의 아저씨!’ 나에게는 답답한 사람...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


강윤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 사람만 사랑하면, 결혼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야 되는 거더라고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고 무거웠어요. 나는 내가 중심을 갖고 내 가정을 만들면서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중심을 가지려면 능력이 있어야 되더라고요. 능력이 있으면, 주변이 나를 흔들어 놓는 것에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했어요.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기도 하고요. 나 스스로가 힘이 생기는 것을 느끼기도 하겠지요. 나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악착같이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서 남들이 대단하게 봐주는 변호사가 되었어요. 시댁에서는 크게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별로 서운하지도 않았어요. 그보다 내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바빠지면서 아이에게 신경을 잘 못 쓰는 게 되기도 했고, 아이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해서 애를 유학을 보냈어요. 남편이랑 둘만 집에 남으니, 우리는 공통 관심거리가 없더라고요. 서로에게는 관심이 없는 거지요. 그리고 내 속도에 남편이 자신의 속도를 맞춰주기 바랐지요. 내가 사랑했던 남편은 나와 무엇이든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남편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이었어요. 그 사람은 나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시어머니, 시아주버니, 시동생... 그리고 친구들이 그 사람의 가족이었어요. 나는 주변인. 내가 그 사람의 가족이 되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울타리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웃고 울 수 있어야 되더라고요. 난 싫었어요. 그러기 싫었어요. 재개발이 될 듯 말 듯 한 그 동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미래가 없는 사람들 마냥 오늘만을 위해 웃고 울면서 살기 싫었어요.”


강윤희는 자신의 말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 말을 잠깐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김지영을 바라보았다.


“지영 씨가 부러워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뜻하지 않는 장애물이 될 때가 있어요. 그래도 난 그 장애물을 넘어서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괜찮아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 수가 있나요? 나도 지영 씨 남편 분 같은 사람이랑 만나서 결혼했다면, 또 다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나의 아저씨’와 살다 보니 변명 같지만 내가 선택할만한 행복한 길이 그때는 나에게 없었던 것 같아요.”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영 씨, 그 노래 알아요?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 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강윤희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불러댔다. 그리고는 민망한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나는 이 노래 듣고 화가 났었어요. 듣는 사람도 없는데, 왜 다들 모여서 힘들게 노래를 불러요? 그것도 밤새도록.”


김지영이 웃었다.


“그러네요.”

“나는 이 노래 들으면서 처음에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다 모이게 했나 생각했는데, 내가 살아보니 시댁에서 오라고 하기도 전에 아들이 알아서 손자, 며느리까지 다 데리고 갔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효심의 반이라도 같이 사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쓴다면 최소한 외롭지는 않을 텐데, 여기저기 다 쓰고 남겨서 주려 하니, 남은 게 있어야지요. 나만 발버둥 치면 뭐해요. 내게 머무는 시선은 없어요.”


그 날 김지영은 더 이상 강윤희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두워진 서점 안으로 들어온 김지영은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를 띠면서 『82년생 김지영』 책 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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