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에 쉽게 조언하고 내 시간은 소중한 행성
- 나의 행성에서 만난 어린 왕자 -
나는 네모 반듯한 테이블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네모난 노트에 적어 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작은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어림잡아 고작해야 12살 정도 된 것 같았다. 아니 그 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래서인지 난 그 아이가 낯설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아이가 나의 네모 반듯한 테이블 모서리까지 걸어왔다.
“여기는 어디지요? 난 내 장미꽃이 있는 나의 별로 가고 싶어요.” 다정한 말투 속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자, 여기에 잠깐 앉으세요. 길을 잃었나 보네요.”
나는 아이를 나의 네모 반듯한 테이블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에 앉히고는 우유를 한잔 내주었다. 그리고는 선한 눈빛과 따뜻한 미소로 그를 먼저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는 주저 없이 나의 딱딱한 의자에 올라앉아서 목이 많이 말랐던 듯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의 따뜻한 대접에 안심이 된 듯이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다시 내 별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제가 돌봐줘야 하는 장미꽃이 있는 제 별로 말이에요. 그런데 여긴 어디지요?”
“이 곳은 소행성 SM0529에요.”
나는 그 아이에게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확한 행성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 어린아이를 위협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나는 그 아이가 나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눈빛을 느끼면서 내가 가진 학력, 경력, 결혼 생활, 육아 그리고 내 부모와 형제 이야기까지 쏟아내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눈앞에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가 교양이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려 보였던 그에게 조차 난 계속 존댓말을 써댔다.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에게 나를 드러내기에 바빴고, 드디어 나는 그가 나를 믿을 만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나에게 어떤 다른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내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의 신뢰가 쌓였다고 믿었다.
그때쯤 그가 다시 물었다.
“저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다시 내 별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제가 돌봐줘야 하는 장미꽃이 있는 제 별로 말이에요. 그런데 여긴 어디지요?”
그는 나에게 자기 별로 돌아가는 길을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자기 별로 돌아갈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의 별에 대해 물었다.
“당신의 별에 무엇이 있다고요?"
"누구랑 살았어요?"
"혼자 살았어요?"
"그 별 주변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당신은 이곳까지 무엇을 타고 왔지요?”
소나기처럼 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관심의 질문이 아니라 그를 위한 해결의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이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입력될 때마다 나는 재빠르게 그의 별로 돌아갈 만한 물리적인 방법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그의 설명을 들어도 그의 별이 어떤 곳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들이 지금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자 나는 방향을 바꾸어 지금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갑자기 낯선 곳으로 왔으니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머리로는 내가 함부로 그의 감정을 읽어 내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내 입에서는 현란한 표현들을 뒤섞어서 그를 위로하려는 말들을 아주 간단하고 쉽게 뱉어 내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도는 공장의 곱게 포장된 상품들처럼 내 말들은 일사불란하고 조심스럽게 간단한 과정을 거쳐 툭툭 배송차에 실리고 있었다.
내 말들은 열어보고, 또 열어보면 그 안의 알맹이는 아주 간단하고도 누구도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무엇보다 그 핵심은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 당신만이 당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였다.
그는 나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그 딱딱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나는 내 할 일을 끝낸 것 같았다. 나는 돌아갈 것 같은 그에게 아쉬움을 느끼기보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힘이 됐을 거라는 안도감과 오만함으로 네모 반듯한 탁자 위 우유 컵과 그가 떠난 의자를 정리했다. 나는 그가 자기 별로 잘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했다는 뿌듯함을 홀로 느꼈다.
혼자가 된 나는 ‘오늘 내가 할 일을 적는 네모난 메모장’을 꺼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만의 행성에는 주변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지만 주변을 깊이 있게 알아가고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혼자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