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집에서 놀지 않았어요~

: '닥터 차정숙'의 차정숙 씨를 보면서

by 박세미

안녕하세요. 정숙 씨.



저는 정숙 씨의 드라마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새로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박셈이에요.



저는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가정밖에 모르는 아내, 아내를 무시하고 바람피운 남편,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시어머니, 엄마의 도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런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뻔한 이야기.



그래서 본방사수는 하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 예상은 맞아요. 뻔한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제가 몰랐던 것이 있더라고요. 그 뻔한 이야기에 제가 용기를 얻었어요.



조금 저와 다른 상황은 있지만, 경력이 단절된 가정주부의 삶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정숙 씨가 다시 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모습이 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하고, 우연한 기회에 공무원이 되었어요. 공무원 시험을 따로 본 것은 아니었고요. 제 전공으로 필요한 자리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공무원이라고 9시 출근, 6시 퇴근이 아니었어요. 국내외 출장도 많고, 야근도 많았어요.



그때 일은 너무 많았지만, 새롭게 해 보는 경험이 많아서 즐거웠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보다 대체로 10년 이상씩 차이가 나다 보니 예쁘게 봐주시는 것도 있었지요. 재미있는 직장 생활은 제가 육아를 시작하기 전까지였던 것 같아요.



육아를 하게 되면서 저는 휴직을 하고 퇴직을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제가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족은 하나의 팀이었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도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저의 40대를 멋지게 준비하기로 결심했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7개월 때부터는 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새로운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교사자격증을 땄지요. 지금까지 했던 공부와는 너무 달랐지만,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제 생각만큼 기회를 호락호락 저를 찾아오지는 않았어요.



20-30대에는 무엇인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그 준비한 것을 시도해 볼 기회도 있었던 것 같은데 40대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저보다 젊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저에게 그 자리를 줄 이유가 없는 것 같았어요. 40대에는 능숙함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생소한 일에 뛰어드는 것이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가면서 저도 제시간을 만들어 일을 했어요. 내 이름이 아이의 엄마라는 호칭 뒤에 숨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하루 24시간,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러가요. 제가 너무 쉽게 나의 일을 포기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소속감이 없다는 것 빼고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위안 삼았어요.



저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남편과 제가 팀이 되어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에 만족스러웠어요. 남편도 많이 도와주었고요. 저는 똑순이 살림꾼은 아니었지만, 살림살이가 늘어가는 것과 아이가 성장하는 것에 나름 보람을 느끼며 행복했어요. 마지 저는 제 일과 가정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느낌이었어요. 그 세월 속에서 저희 아이도 벌써 중학생이 되었고요. 남편도 어느덧 회사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자리에 있게 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제게 이전 직장과 비슷한 일을 할 수도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제가 다시 그전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인 것을 알면서도 그 제안을 기쁨 마음으로 받지 못했어요.



제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일을 제안해 준 분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를 물었어요. 저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 툭 튀어나왔어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나는 나만 챙기면 되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내 순서는 제일 마지막에 오거든요. 그러면서도 거절도 선뜻 못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발버둥 치면서 잡으려고 했던 내 일이라는 것들이 내가 절실하게 원했던 일들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혼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모두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말이지요. ‘잘한다’는 말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굳이’라는 말만 듣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런데 직장에 있으면 그런 것들이 모두 해소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내가 많이 지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 정숙 씨가 떠올랐어요. 저는 정숙 씨에 비하면 조금 더 젊고, 정숙 씨처럼 시험준비를 하고, 수련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정숙 씨를 보면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요. 정숙 씨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시작하는 입장이니까요. 일단 해보고, 아니면 그때 그만둬도 된다는 생각을 했지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1시간 40분 거리를 출퇴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먼 길을 제시간에 다닌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일주일 정도 되니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에 치인다는 생각보다는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출퇴근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회에서 40대 후반은 많은 나이였어요. 사람들은 저를 궁금해했어요. 저에게 어떻게 이 직장에 들어왔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솔직히 업무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제 자리에 있던 사람은 젊은 사람이어서 일을 아주 빨리 배웠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저의 나이 때문에 저에게 관심을 가질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들 눈에는 살림하다 나온 나이 많은 아줌마였어요.



사람들은 제가 어떤 소속감 없이 일했다는 것으로부터 ‘집에서 놀다가’ 나온 줄 아는 것 같았어요.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어요. 전 직장을 그만두고도 제 일을 하는 것에 하루도 쉰 적이 없는데요. 물론 일의 성질이 바뀌긴 했지요. 직장을 그만둔 지 20여 년이 된 지금 내 명함은 없지만, 프리랜서로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고, 아동도서를 심사하고, 아이들 과외도 하고, 나의 글도 꾸준히 쓰고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어요. 그런데 남들의 시선만 그런 것은 아니더라고요. 나도 출근하면서 유리창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낯설어요. 내 머릿속에 나는 그동안 항상 30대 후반인 것 같았어요. 생각해 보니 집에 있을 때, 거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더라고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정확한 시계 같았어요. 내 시계는 30대 후반에 멈춰있었으니까요. 직장 다닐 때 옷들을 꺼내 입었는데, 몸은 들어가는데 태가 바뀌었더라고요. 옷은 그 시간에 머물러 있지만, 나는 이제 그때 내가 아니에요.



정숙 씨가 떠올랐어요. 높은 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장애가 되었던 상황 속에서 당당하고 의연한 정숙 씨가 떠올랐어요. 정숙 씨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보고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자신을 사랑하고 미래의 자신을 기대하는 것 같았어요.



특히, 환자들을 대하던 따뜻한 아줌마의 감성은 그런 정숙 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정숙 씨가 살림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성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가족들의 마음을 살피면서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겪어야 하는 사회생활은 아줌마만의 바이브를 만들어 내거든요.



저도 정숙 씨 생각을 하다 보니 제 안에도 그런 바이브가 있기는 하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새침하게 앉아 있었을 텐데,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하고, 모르면 넉살 좋게 물어보기도 하고, 시키지 않아도 소소한 것들은 알아서 챙기더라고요. 저도 놀다가 나온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면서 지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남들의 시선에 움츠러든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나를 과거에 매어 놓은 것을 깨닫는 순간을 마주하면 민망함에 웃음이 났어요. 한 달쯤 지나면서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이 이제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익숙하다고 쉬운 것은 아니에요. 아침에 아이보다 먼저 출근하면서 아이의 아침을 준비해 놓아야 하고,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먹을 간식도 챙겨 놓아야 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 집안 정리와 세탁기도 돌려야 해요. 나의 일상에 직장만 그대로 들어온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새로운 세계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것에 쾌감은 분명히 있어요.



제가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정숙 씨의 도움이 컸어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이것이 맞는지 흔들리는 순간이 많이 찾아올 거예요. 그때마다 정숙 씨가 떠오를 것 같아요.



저 역시 정숙 씨의 도전을 응원해요.

누구보다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실 거예요.

아니, 이미 되셨어요.



저보다 먼저 용기내서 그 길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드립니다.



2023. 8.

박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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