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

: ‘요즘 애들은...’

by 박세미

도서관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4명이 이미 타 있었다. 얼굴은 앳되었지만, 체격이 좋은 남학생들이어서 교복을 입지 않았다면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학생들은 서로 몸을 밀치고 누르면서 엎치락뒤치락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쿵쿵댔고, 아이들은 ‘엑, 윽’ 같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그 순간은 1분도 되지 않았을 텐데, 학생들이 서로 밀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10분은 되는 듯했다.



불쾌했다. 하지만 나의 불쾌감을 드러내기에는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방패 삼아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러면 안 됩니다!’라는 기운이 학생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혼자서 날카로운 눈의 레이저를 허공에 쏘아댔다.



내가 쏜 레이저가 학생들에게 튕겨져 나오듯이 학생들의 몸짓은 더 거칠고, 시끄러워졌다.



‘이런 씨!’



나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가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타고 그 안에서 바로 사라졌다.



그때, 조용하고 묵직한 한 마디가 들렸다.



“우리 모두 조용히 합시다!”



나의 일행 중 한 분이 학생들과 등지고 무심한 듯 툭 한 마디 내놓았다.



그 한마디가 엘리베이터의 공기를 바꾸어 놓는 듯했다. 순간 나도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너무 어른답지 못한 마음으로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창피했다.



잠깐의 차분한 공기가 1층에 도착하면서 열린 문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학생들은 활짝 웃으며 우당쿵쾅 서로 밀고 밀리면서 ‘훅’하고 1층에 던져지듯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 잠깐의 정적이 안정감을 주었다.



지하 1층 도착해서 일행과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그 무겁고 불편한 감정들을 짧게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일행들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의 일을 털어냈다고 생각한 순간, 내 앞에 가고 있는 두 여자가 나누는 날카로운 말이 나를 다시 엘리베이터 안에 가두었다.



“자기들도 그런 때가 있었으면서!”

“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 여자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면서 고개를 흔드는데, 그 고갯짓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여자가 나라고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 흔들거리는 고갯짓에서 내가 보였다는 것이 순간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때서야 그 두 여자도 나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엘리베이터에는 중학생 네 명과 나와 일행 세 명 그리고 낯선 두 여자가 함께 타 있었다. 그 두 여자의 존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그 사람들도 학생들의 장난이 불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두 여자가 분명히 나에게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감정적으로는 동지 같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기들도’의 자기들이 나와 일행일 것이라는 생각을 그 말만 들었을 때는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끝에 고개를 흔들어 대는 모습에서 나를 느끼면서 이들은 우리와 동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대 초반 정도 된 이 여자들은 학생들의 행동보다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나와 나의 일행이 더 불편했던 것이다.



놀라웠다. 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 완전히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학생들의 행동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바늘구멍만큼도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0퍼센트 내가 옳다는 상황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왜 이번 일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려고 하면 할수록 ‘모두 조용히 해야 하는 도서관이었고, 엘리베이터라는 제한된 공간이었는데 몸싸움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사과도 없이 웃으면서 내리다니 요즘 아이들...’ 또는 ‘나와 일행이 가르치듯이 고압적으로 학생들에게 표현한 것도 아니고, 어른으로써 그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을 했을 뿐이야’ 와 같은 나의 완벽한 이유들이 변명 같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으면서 그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질과 나의 행동을 흉내 내는 그 모습에 배신감까지 들었다.



물론 그 여자들의 말처럼 나도 그 중학생들 같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우리 학교는 다른 동네로 이전했다. 그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단 한 대밖에 없어서 우리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69-1번 버스 한 대만 타고 다녔다. 하교 시간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집에 올 수 있었지만, 지각이 두려운 등교 시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9-1번만이 가장 적게 걷게 우리를 학교 앞에 데려다주었다. 그래서 등교 시간이 되면 지옥이었다. 매달리듯 버스를 타는 아이들이 생기자, ‘푸시맨’이라는 아저씨가 등장해서 아이들을 짐처럼 버스 안으로 밀어 담았다. 아이들은 공기를 삼키면서 빈 공간 없이 밀려 들어갔다.



아이들이 밀려들어가면서 내는 소릴, 버스가 코너를 돌면서 쏠리는 소리, 급정거하면서 울컥 밀렸다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내는 소리 등 버스 안은 단 1초도 조용하지 않았다. 조용하지 않은 그 상황을 나는 시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등교시간 때에 그 버스를 타는 어른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끔 운이 없는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타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시면, 나도 그때는 ‘떠들면 얼마나 떠든다고 저러실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여자들의 말에 나는 그때가 생각이 났다. 아무리 그 학생들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그때의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만, 우리는 장난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어른들에게 혼이 났었다. 어른들에게 지적받으면 그 순간에라도 조용히 하려고 했었다.



하루 종일 그 여자들에 대한 배신감과 내가 그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빡빡한 내 마음에 남은 찝찝함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 여자들에 대한 것보다 내가 그 학생들 행동과 그 여자들 말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답답하기까지 했다. 내가 틀린 것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개운하지 않았다.



하루의 끝에 남편과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그건 네 입장이라면서 그것이 ‘꼰대’라고 했다. 우리 아이도 어떨지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데, 수용적인 태도로 객관적인 척하는 남편이 꼴 보기가 싫었고, 나는 더 화가 났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꼰대’로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우연히 나의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 나의 ‘꼰대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모임에서 별생각 없이 흘러들어 간 이야기에서 엘리베이터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보다 대 여섯 살 정도 아래인 사람이 가볍게 한 마디 했다.



“그건, 요즘 애들이 아니라, 그 학생들이 그런 거예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교복 입은 학생들 네 명의 모습을 보고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내 모습 자체가 꼰대였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어느 시간부터 내 혀끝에는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꼰대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개운해졌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로 묶어 버려 어떤 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방통행만 하는 꼰대의 시선이 나의 모든 생각에 정당성을 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자리에서만 바라보고 맞고, 틀리고를 결정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된 것이 이해해 줄 여지를 없애 버린 것 같다.



나이만 들었다고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는 나이가 들었지만 ‘이러저러해서’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고, 누구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지금 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막힌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 덕분에 나의 꼰대 민낯을 마주한 것이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어렵고, 다르다는 것만 알겠다. 그래서 젊고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요즘 아이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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