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보내고 남고...
주말 저녁 거실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던 남편이 핸드폰 벨소리에 일어나 앉았다. 여느 때와 같이, 특별할 것 없는 벨소리가 무겁게 남편을 끌어당겨 앉혀 놓았다. 남편의 형에게 온 전화였다. 수화기 밖으로 시아주버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한 톤 높아지는 격양된 남편의 목소리가 방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아주버니는 어머니 집 아래층에 사신다. 얼마 전 시어머니의 무릎이 또 말썽이 났다. 아픈 무릎에는 몸의 일부 같이 항상 같은 파스가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이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시다 보니 그 무릎이 더 못 버티는 것 같다. 80세가 가까워지는 노인들에게 통과의례 같은 무릎 수술을 어머니가 몇 해 전에 하신 적이 있었다. 너무 무릎이 아파서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다 보니 수술을 받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큰언니가 그쯤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시는 것을 보시더니 어머니는 수술 대신 파스를 선택하셨고, 주사를 선택하셨다. 이제 어머니가 무릎이 아프다는 이야기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정도로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무릎뿐만 아니라, 요즘은 어지럼증까지 생기셔서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이야기를 형님에게 며칠 전에 들은 터라, 시아주버니의 전화가 그런 소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싶었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됐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건강상의 일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방문을 열고 나오기도 전에 ‘이모님이 돌아가셨데.’라고 말했다. 문 사이를 타고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가 어디가 아프신가 했던 걱정에서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컸다.
남편에게 이모님은 세 분이 계신데 어떤 분을 말하는 건지 궁금했다. 동시에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시어머니는 4녀 2남 중 셋째다. 돌아가신 분은 어머니의 둘째 언니다. 나는 그 이모님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 더 놀랐다.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 이모님을 뵌 것은 어머니 친정의 경조사를 통 털어도 열 번이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이모님은 이모님들 중 가장 키가 크고 말랐었다. 이모부도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서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셨다고 들었다. 내가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면 내 손을 한 번 잡으시는 것이 전부였다. 항상 별말씀 없이 웃기만 하셨다.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깐 집안이 소란스러웠지만, 남편은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어지러워 언니의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남편과 시아주버니 둘이서만 장례식장에 아침 일찍 가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마음속에 흙탕물이 한 번 뒤섞이는 듯하더니 이내 금세 가라앉은 것 같았다.
둘째 이모님의 장례는 시어머니의 형제 중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지러워서 언니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형제를 처음으로 떠나보내는 그 마음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이 아파서 장례식장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어머니가 더 속상해하실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 댁에 갔다. 어머니가 반갑게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예상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언니를 떠나보낸 슬픔보다 손주와 며느리가 더 반가운 것 같았다. 어머니 마음의 흙탕물은 진작에 가라앉았다.
이모님의 이야기에 어머니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이모님께서 병원에 계실 때 몇 차례 가서 뵙고 왔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이모님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병원에서 계속 누워만 있다 보니 더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면서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 앞에 한 마디 툭 던지셨다.
“호스만 빼면, 바로...”
어머니에게 장례식장에 가서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언니를 보내는 의식은 크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어머니는 언니를 만나고 나오던 그날, 언니를 떠나보낼 마음을 다지고, 다지고, 또 다졌던 것 같다. 마치 언니가 떠날 표를 들고 있던 것처럼 어머니에게는 보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이미 언니를 떠나보냈던 것 같다.
어머니 댁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괜찮아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 의연해지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서 인이 박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떠날 사람이 떠나야 떠난 사람도 더 힘들지 않고, 남은 사람들도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빈자리에 슬퍼하기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일상에 감사하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문득 둘째 언니가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한동안 자주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언니를 잘 떠나보내 그리움도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