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와 상황에 적절한 분노 표출 법 찾기
분노란 사전적으로는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거나 그렇게 내는 성’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성이란 ‘노엽거나 언짢게 여겨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을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분노는 인간이 느끼는 불쾌한 본능적인 감정으로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내 안의 분노를 스스로 느낄 때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분노의 원인이나 표현법을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 당황스러움은 억울함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나만 힘들거나 나만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안의 분노는 고개를 든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분노를 수반한다.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 툭 튀어나오면 대부분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내가 주로 분노를 느낄 때는 부모님이 보이는 다른 형제에 대한 편애, 선생님이 보여주는 다른 친구들과의 차별, 친구가 나에게 주는 서운함 등과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억울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적할 수 없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분노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엉뚱한 곳에서 터뜨리거나, 혼자서 우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친구들에게 서운할 때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와 함께 울었다. 어느 상황이건 간에 그때는 울어야 나의 분노는 끝이 났다.
눈물이 주는 위안이 있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엉엉’ 소리를 내서 울고 나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민망하다. 혼자 있더라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나 민망함은 잠깐이다. 그 영화나 음악은 나에게 오랜 여운을 남긴다. 내 속의 모든 슬픔을 그것들이 쓸어내려준 것이 개운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흔히 ‘운다고 해결되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운다고 해결은 되지 않는다. 다만, 울면 내가 나를 한 번 다독일 수 있는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려서는 우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더 우는 것이 힘들다. 나는 자라면서 우는 것 이외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분노는 차오르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분노는 내 안에 꽉꽉 차서 터질 듯하면서 터지지 않고 위태롭게, 위태롭게 내 안에서 버티고만 있다. 그 모습은 바람이 가득 찬 풍선 같기도 하고, 도화선에 불이 붙은 시한폭탄 같기도 하다. 이런 날이 점점 많아진다. 어쩌면 이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보기에 성숙하게 분노를 다스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찾은 분노 표출의 방법은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은 나의 감정의 쓰레기장 같은 곳이었다. 나의 사춘기의 절정은 18세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일기에 매일매일 욕을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업 등 모든 것에서부터 엄마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지인의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주변이 매우 불안하게 느껴졌고, 나의 진로에 대해서도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그때 세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세상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어떤 것 하나 이해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의 모든 악한 감정을 나는 그 일기장에 다 토해 냈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감동받아서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일기장은 그저 나의 욕받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가식처럼 느껴졌다. 나의 일기는 분노 자체였다. 불태우지 않는 한, 함부로 어디 버려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도 내가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일기장을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다시 열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일기는 다시 쓰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그렇게 적나라하게 욕을 뱉는 것이 더 이상 지성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른의 모습으로 나의 분노도 정제된 감정의 상태로 배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는 내 개인의 분노는 입을 통해 나왔다. 불만이 있으면 나름의 논리로 상대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논리력으로 무장된 나의 솔직함이 상대가 받는 상처나 당황스러움 같은 것보다 앞섰던 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서울깍쟁이’ 일뿐이었다. 다른 선후배 동기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할 때는 귀만 열었다. 나는 그들의 분노에 동조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려고 좁은 평균대 위에 혼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동조할 수 있는 분노의 책임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책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두려웠다.
사회에 나와서 나의 분노는 더 다양해졌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 개인적 불이익에 대한 분노, 오해와 선입견에 대한 분노 등 그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내가 술을 잘 마시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한 잔 술에 그 분노를 떠내려 보내는 것 같았다. 술자리가 같은 공간에 같은 분노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곳 같았다. 침몰하는 배에 함께 탄 동료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전 날 밤 위안이 주는 쓰라린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동료애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나도 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위안을 주고받았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고, 글로 다 써내 놓고 싶은데 더 이상 일기도 쓸 수 없고, 사람들을 만나서 구차하게 술로 위안을 받고 싶지 않았던 때가 나에게 있었다. 오롯이 나 혼자서 나의 분노를 마주해야만 했다. 왜냐면, 나만 겪는 유별난 분노가 세상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찾은 것이 피아노였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 손에 끌려가서 앉은 피아노 앞은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피아노 위를 돌아다니는 내 손이 내 손 같지가 않았다. 피아노를 한 참 연주하다가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원장 선생님께 레슨을 받으면서 그냥 내가 피아노 안으로 녹아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피아노는 나를 한 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를 간신히 그만두었다. 20여 년이 지나서 그렇게 싫어했던 피아노를 내가 먼저 찾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이엘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루마의 곡을 치는 것을 목표로 해서 매일매일 피아노 학원을 갔다. 하루에도 틈만 나면 몇 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주에 떠 있으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피아노 연주 소리 이외에는 어떤 세상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피아노가 나를 위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분노가 가득 차도 피아노를 치고 나면 피아노 선율에 그것들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더 이상 피아노가 나의 분노를 날려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또 다른 분노의 모습을 가지고 왔다. 그 분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피아노를 아무리 두드린다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분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피아노의 환상적인 소리에는 묻힐 수가 없었나 보다. 그때부터 나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등 집안일을 했다. 특히, 나는 화가 많이 나면,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꾼다. 일단 몸을 움직이다 보면 몸이 힘들어서 분노가 더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집안 분위기는 나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집안일만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분노를 잠재우던 모습에서 씩씩대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분노를 뿜어내는 모습이 대조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내 분노의 모습에 맞춰 그것을 표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달라진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다듬으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10대에는 눈물과 글을 통한 편지나 일기로, 20대에는 눈물과 말을 통한 소통으로, 30대에는 전우애를 만들어 내는 술을 통한 소통으로, 40대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집안일로 나의 분노를 표출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분노는 폭력을 수반해 왔다. 폭력은 누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지 않아도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나에게도 남았다.
또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깊고 슬픈 지워지지 않을 자국이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한 감정, 서운한 감정, 억울한 감정에서 시작된 분노가 불처럼 내 안에 번지는 것을 가만히 안으로, 안으로 타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다. 상처가 남더라도 그 위에 딱지가 앉을 것을 기대하며 분노를 적절한 방법으로 내놓아야 한다.
나의 10대, 20대, 30대, 그리고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분노에 대한 대처법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분노의 민낯을 생각해 보면,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왔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한편으로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분노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아직은 모르지만, 내 나이와 상황에 맞는 분노 표출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다독이고, 남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의 분노에 대해 누구를 탓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그 속도에 맞춰 성숙하고 세련된 어른이 되고 싶다. 더 훗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건강하고 재미있는 분노 표출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분노를 착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분노는 인간이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분노를 부정적으로만 가둬놓기 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에는 착한 것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