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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Jul 06. 2020

고립에서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영화 <#살아있다> 후기


 오랜만에 영화의 침체기 극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영화관에 갔다. '#살아있다'를 보고 어떤 해시태그가 어울릴지 생각하며 상영관을 털레털레 걸어나왔다. 그 발걸음이 두 가지 측면에서 씁쓸했다. 잠깐 스친 고립감 관련 생각들이 쓰렸다. 또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KF94마스크를 쓰고 본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발걸음이 영 시원찮았다. 그 고립감에 주목한 듯하지만 영화는 이와 같은 주제의식을 좀비아포칼립스와 스릴러 장르에 넘겨버렸다. 그렇다고 장르물로서 인상 깊은 결과를 내지도 않은 것 같다. 깊게 씹어볼 만한 장면이나 서사가 내용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크게 없었다.


감독 조일형/ 출연 유아인, 박신혜 / 개봉 2020. 06. 24.


멧 네일러의 원작 시나리오의 제목은 <Alone>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위의 말에 따르면 제목이 <Alive>(#살아있다의 영어제목)가 아닌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하는 시선이나 짊어져야 할 과제들이 의도와 무관하게 나를 공격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경쟁사회가 주는 숙명이라고 얼버무리기엔 보다 더 복잡하다. 모두가 경쟁자로 느껴지는 순간이 주는 압박 외에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립감이다.


 문만 열고 나가면, 인터넷 접속만 하면, 메신저나 SNS만 켜면 곧바로 경쟁이 펼쳐진다. 시간에 대한 무감각은 용납할 수 없는 환경이다. 영화 후반부 8층으로 피신 갔을 때 접한 호의는 영화의 서사를 떠나서 대부분 어색하게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호의는 나에게 어떤 콩고물을 얻어갈지 의심하는 게 우선이다. 그 세상에서 배후공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현실 속 고민의 전원을 잠시 내려줄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 공간을 함께 나눌 사람에겐 희소성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다. 그렇게 우린 고립된다.


 그 고립감이 해소되는 구간이 있다. 박신혜와 유아인이 서로의 생존을 알아채고 연결됐을 때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가 애타게 찾는 타인의 역할이 보였다.둘이 대화를 나누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때, 짜파게티를 끓이며 각자가 요리하는 방식과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때 둘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Alone>을 <Alive>로 바꿔주는 건 결국 타인인 셈이다. 그 완벽한 타인을 위해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 맺어가는 굴레를 반복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줄곧 해시태그는 ‘#살아남아야한다’로 인터넷 공간을 채운다. 우린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좀비처럼 서로를 물어뜯기도 한다.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다 결국 스스로에게마저 감춰버린다. 가족에게도 쉽사리 꺼낼 수 없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도 않거니와 가족은 걱정시키지 말아야할 존재가 돼버린 지 오래다. 경쟁을 위해 가끔은 타인에게 모질 수 있다는 암묵적 윤리를 공유하며 우린 서로에게 멀어진다.


 살아있다는 감각 즉,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일상의 몇 조각 없다. 개인적으론 요즘 그 몇 조각조차 없다. 그 일상에서 이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구호는 마지막에 가서 ‘#살아있다’로 바뀐다. ‘살아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봐줄 때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게 아닐까. 마지막에 옥상에서 유아인의 외침이 조금은 맴돈다. “나 살아있어요!!! 살아있다고요!!!” 배경음악으로 밀양아리랑이 깔렸어도 괜찮을 법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좀.보~소오~





 의미 부여를 열심히 해보았지만 감상하면서 계속해서 든 생각은 하나다. 그냥 <서치>에 감명을 받은 분이 좀비물을 만들고 싶으셨군! 근데..정말..클리셰 범벅에 캐릭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몰입이 안 됐다. 두 캐릭터가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좀 안쓰러웠다. 제작자도 참 속이 탔겠다 싶었다. 초인으로 설정되지 않은 두 캐릭터가 좀비 사이를 넘나들며 갑자기 히어로가 됐을 땐 개연성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뛰고 있었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옥상에서 구조될 때까지는 난해함에 신파까지 얹어져 웃음(?)을 자아냈다. 꽤나 고생하셨을 것 같은 배우 분들에겐 큰 박수를 드릴 따름이다. 드론을 비롯해서 나름 설정한 세밀한 장치에 더 주목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두 캐릭터가 소통하며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장면이 짧아서 아쉬웠다. 그 부분만큼은 좋았던 터라 나에겐 너무나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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