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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Sep 20. 2020

그런 노력

고작 30년 인생이 말하는 인생학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정해 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모든 노력에는 분기점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아주 적은 확률로 분기점에 이르기 전 ‘운’으로 분기를 넘기도 한다. (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질과 양이 다를 수 있으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노력이란 그런 것이다. 10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10을 채워야 결과가 나타난다. 1을 채우든 9를 채우든 간에 10을 채우지 못했다면 그 노력은 아무 결과도 내지 못한다. 그럼 그간의 노력은 모두 허사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다시 시작했을 때 훨씬 더 빠르고 쉽게 그 숫자에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머지 숫자를 채워야 한다.


물론 그렇게까지 노력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있다. 적당히 지금 버는 돈과 흘러가는 인생이 만족스럽다면, 그리고 향상심이 편안함을 넘지 못한다면, 그런 노력을 낼 수도 없을뿐더러 낸다고 그 성과가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은 팩트다. 현실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고통을 감내하며 나아가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다. 따라서 그 결과를 두고 어딘가, 또는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 구조의 탓, 교육의 제도의 문제,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 등. 탓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실제로 그것들이 문제일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변화된 정책과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삶이 있었다. 5시간, 6시간 자는 시간 외엔 하루 종일 일만 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 생활은 생존을 위해 내가 어쩔 수 없이 노력당해왔던 시간이다. 아쉽지만 수동적으로 겪은 노력의 시간은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다만 그 인고의 시간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내 삶이 나빠지지 않게 해 준다.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부가적인 노력이다.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하면 좋아지는 그런 노력. 5시간 6시간 자면서도 그 시간마저 줄여 두어 시간 글을 쓰는 것. 일을 하는 동안 피곤함과 게으름을 이겨내고 책을 읽는 것. 그런 노력 말이다. 노력은 때때로 생존의 문제이지만 분명 선택의 문제일 때가 있다.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적당한 노력은 지금처럼 지낼 수 있게 해 주고, 그보다 못한 노력은 점점 인생의 한 부분들을 빼앗아 갈 것이며, 많은 노력은 분명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방향성과 효율은 나중의 문제다. 균형을 잡는 것은 핸들을 돌리기 전에 페달을 밟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바퀴가 굴러가야 넘어질 수 있다. 반 바퀴, 한 바퀴, 두 바퀴 굴리다 보면 어떻게 해야 더 오래 넘어지지 않고 굴러갈 수 있는지 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시간만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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