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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an 28. 2024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고


지금은 케케묵은 제도라 없어졌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딱 십 년 전일 때 나는 우등반에 속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수준별 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우열반이 존재했다. 전교생이 삼백 명을 넘지 않는 섬의 작은 고등학교를 다닌 덕에 영문도 모른 채 우등반에 들어간 나는 선생님들의 총애와 아이들의 선망을 받았다. 그때 나는 전교 삼등과 사등에서 엎치락뒤치락거렸다. 이왕 우등반에 들어갔으니 일등을 노렸다. 우등반으로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오랫동안 지도를 받는 혜택을 당당하게 누리면서 그저 일등만 바라봤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고사를 앞두고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다. 오늘을 기점으로 일곱 명뿐인 우등반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이과에서 슬슬 두각을 보인다던 아이는 우연하게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앞문을 열며 들어왔고, 저마다의 문제집을 펼친 아이들을 향해 쑥스럽게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밋밋한 인사가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우등반에 들어온 소감을 한 마디 해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하던 아이는 이내 목을 가다듬고 우등반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줄어들더니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때 울컥 감정이 솟았는데, 내가 지닌 언어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어 그저 뜨거운 박수만 칠 뿐이었다.


이번에 나온 신간, 박완서 작가님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꼭지 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편을 읽으면서 그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왜 울음을 삼키려 애쓰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친구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선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물론 힘들 때는 걸어가기도, 쉬어가기도 했겠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나는 일등이 아니면 다 필요 없다고, 꼴찌만 아니면 선방한 게 아니냐고 자문하던 사람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을 왜 쓰냐며 일기조차 따로 적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그 아이의 울음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나아가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점심을 같이 먹고 동그란 운동장을 따라 산책하던 친구가 그 당사자이자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예전의 기억을 열어젖히도록 도운 책의 꼭지로 돌아오면, 박완서 작가님은 환호를 지르고 싶다는 갈망을 따라 마라톤의 선두 주자를 보기 위해 멈춘 버스에서 내린다.


나는 치마를 펄럭이며 삼거리 쪽으로 달렸다. 삼거리엔 인파가 겹겹이 진을 치고 있으리라. 그 인파는 저만치서 그 모습을 드러낸 선두 주자를 향해 폭죽 같은 환호를 터뜨리리라.

(중략)

잘하면 나는 겹겹의 군중을 뚫고 그 맨 앞으로 나설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제일 큰 환성을 지르고 제일 큰 박수를 쳐야지, 나는 삼거리 쪽으로 달음질치며 나의 내부에서 거대한 환호가 삼거리까지 갈 동안을 미처 못 참고 웅성웅성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신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선두 주자를 보기 위해 치마를 펄럭이며 달렸지만, 이내 선두 주자를 한참 놓쳤다는 사실을 알고 맥이 빠진다. 책을 읽는 나도 선두 주자의 표정이 궁금했기에 답답해졌다. 아직까지는 일등을 차지했다는 자랑스러움과 언제 일등을 뺏길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엉킨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것도 박완서 작가님의 훌륭한 필력과 생생한 표현으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선두 주자는 지나갔고, 작가님은 무감각하게, 또는 불쌍하게 달려오는 선수를 마주한다.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모두가 우승자의 골인 광경을 지켜보느라 이 푸른 마라토너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데도 마라토너는 결승점을 향해 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작가님의 글을 빌리면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이자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이다. 문장을 읽고서야 우등반에 들어왔다는, 내게는 조금 평범한 사실 하나로 벅차올라 울고 말던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보냈는지 잡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정직하게 고통스러웠고, 정직하게 고독했다. 전교 일등이나 이미 공부를 깨나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를 보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몫만큼 성실하게 달렸다. 내 가슴이 왜 뭉클했는지, 친구를 도와준 적도 없으면서 심하게 두근거렸던 건 무엇인지 당최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친구는 단순히 기쁘고 설렌 감정만 가지고 문을 열지 않았다. 분위기에서 피어오르는 이유 모를 강인함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희미하게 알 것 같았다. 그건 정직이 뒤따른 고독과 고통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서른을 코 앞에 둔 내게는 과연 우직한 고통과 고독이 있을까. 고등학생인 그때와 비교하면 다행인지 조금은 생겨난 것 같다. 아직은 커다랗지 않지만,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홀로 글을 쓴다는 지점에서. 하지만 푸른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달리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란 어렵다. 누군가 내가 쓴 글과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고, 환호를 보내줬으면 하는 소망이 크고, 지켜봐 줬으면 하는 열망이 크다. 이 커다란 마음을 가만가만 쓰다듬고 내려놓을 때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달릴 수 있는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 명예나 부 같은 가치만을 좇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니다. 나라는 증인을 삼아, 어떤 아이는 열아홉에 그 의지를 다졌다는 걸 눈으로 보았으므로.


올여름에는 나의 세 번째 산문집이 나온다. 이곳에 연재한 원고를 열심히 다듬고 보강해 새로운 원고로 꾸리는 중이다. 두 권밖에 내지 못한 초보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책을 내던 마음가짐과는 사뭇 다르다. 정직하게 썼으므로 비록 많은 이들의 눈에 띄지 않아도 절망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든다. 한편으로는 박완서 작가님이 푸른 마라토너에게 보낸 뜨겁고 활기찬 박수갈채처럼, 발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누군가는 나를 돌아볼 수 있겠다는 희망까지 든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뜀박질할 용기가 생긴 건 덤이다. 학생 시절에는 일등만 바라봤고,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베스트셀러만 눈여겨봤다. 이제는 그 밖의 것들에도 관심이 간다. 책을 덮고 보니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띠지의 "다시 다시 고맙습니다"가 새롭게 읽힌다.





본 에세이는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아 작성한 오마주 에세이입니다. 구독자님들께서 책을 읽어보실 수 있도록 온라인 서점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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