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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pr 11. 2024

글을 써서 잃는 것


솔직한 마음을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아 오히려 글을 못 쓰고 있다. 요즘 드는 기분과 하는 생각을 적나라하게 쓸 수 있어 도리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글을 써서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느낌이라 한 문장을 쓸 때마저 주저한다. 가까운 지인이 알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지닌 채 글을 썼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한 줄의 문장을 쓰기까지 꽤나 망설인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천천히 쌓이고 나는 능숙하게 가면을 갈아 끼운다. 늘 밝게 행동하자고, 최대한 미움을 받지 않는 쪽으로 지내자고 다짐하며 하루를 살다 보니 굳이 가면을 쓸 필요 없는 집에서는 쉽게 슬퍼진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는 날이 늘어났다. 북적이는 맛집에 대기를 걸어두고 설레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도대체 어떤 말을 쓰고 싶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많다. 누군가가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 같다고, 분명 잘했다고 생각한 일에서 아쉬웠다는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아 서운하다고, 부쩍 애인과 말다툼이 늘었다고, 아래층 주민과 씨름을 한다고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구체적이게 쓰는 순간, 지인의 지인을 통해 유추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이 들면 하려던 이야기가 깔끔하게 잠재워진다. 이상한 건 완벽하게 잠재워지는 건 또 아니어서 마음 어딘가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잊기 위해 짧은 영상을 찾아도 그때만 잠시 웃을 뿐, 걱정을 하게 되는 원인은 사라지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낀다.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중얼거렸던 혼잣말은 숨을 쉬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가짜라도 즐겁다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밀고 싶은데 혼자 있을 때마저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마음을 조심스레 밝힌다.


한 번 검열당하고, 두 번 제동 당한 이야깃거리는 시간이 흘러 어떤 것도 무서워지지 않을 때 모두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다. 글에서조차 출근할 때의 기분을 꺼내어 들고 밝은 마음으로 써야 할 것 같다는 강박감이 든다. 처음 글을 올릴 계정을 만들고 목표했던 구독자 수를 돌파했는데, 기쁨은 잠깐이고 곧 이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보고 부담을 느껴 달아나리라는 확신이 들면 그 어떤 글도 올릴 수가 없다. 샌드위치 사장님과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대화나 버스에서 생긴 훈훈한 일이나 재치가 돋보이는 막내와의 일상을 적으며 보답하려 했지만 이야기를 꾸며내는 건 웃음이 나오는 영상을 억지로 몰아보는 것과 비슷해서 큰 용기를 가지고 가면을 벗었다. 나는 아직도 하루만 나를 좋아하고, 이틀은 나를 싫어한다. 한 달은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다가도 슬픈 마음으로 다음 달을 보낸다.


때때로 열리는 강의에서는 수강생들에게 글을 써서 얻는 것에 관해 설명한다. 나를 믿어주는 팬이 생기고, 독자에게 울림을 주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백지 앞에서 막막해지기보다 후련함을 느끼는 감정에 관해 속속들이 말한다.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글을 써서 잃는 것에 대해서는 차마 말할 수 없다. 가족을 험담한 글을 가족이 읽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나의 아픔을 공론화했을 때 첫 만남에서조차 나를 다 안다는 듯이 접근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안하게 위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남길 때, 할 수 없이 글을 괜히 썼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첫 작품을 앞두고 실명과 필명을 고민하는 작가에게 필명을 권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숱하게 들었지만 의구심을 지니기는 했다. 당장 나도 책을 적게 읽는 편은 아니니까. 그런데 요즘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신간의 서평의 빈도를 봐도 너무 드문드문해서 그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다. 그 얘기는 내가 어떤 말을 써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읽히지 않는 글을 오로지 내 욕심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보여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전처럼 내 감정에만 매몰되어 쓰기에는 나는 그 감정에서 많이 빠져나왔고,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쓰기에는 눈치를 자주 보기 때문에 주저하며 쌓인 말만 한가득이다. 이 글은 다른 글과 다르게 곧 지워지겠지만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나의 소식을 궁금해할지 모를 다정한 누군가를 위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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