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가는 대로 가자는 마음으로, 훌렁훌렁 나왔다. 오후 한 시에 두쫀쿠가 나온다는 카페에 일찍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바다가 떠올랐다. 숲도 아닌 바다가 떠오르는 건, 떠오르는 걸 넘어서서 지금 당장 가야겠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기는 건 처음이라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토요일이라 기차나 고속버스 자리는 당연히 없었으므로. 한 시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지만 아쉽지 않았다. 등교를 위해 자주 내리던 역에서 환승을 해 파란색 호선을 길게 탔다. 제주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않는 바다. 카페보다 술집이, 낮은 조도보다 빠르게 깜빡이는 밝은 조명이 있을 바다. 평일 일정이 사라진 요즘에 월요일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좋아하는 바다에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자며 기약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산업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선 바다라 파도 소리 보다 어업인들의 함성이나 무얼 부수고 다시 붙이는 공장 소리가 더 클 게 빤했다.
종점으로 가는 길은 꼬박 두 시간이었다. 역을 하나씩 지나칠수록 텅텅 비는 지하철에서, 지상철과 지하철을 두루 다니며 하늘을 봤다가 어둠을 봤다가 하는 그 지하철에서, 나는 대기업에 계속 다녔다면 토요일이래도 평일 보다 서너 배 비싼 비행기를 턱턱 끊고 널찍한 중문해수욕장의 바다에 손을 담글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일었다. 두쫀쿠를 놓쳤을 때 든 찰나의 아쉬움과는 크기가 달랐다. 그건 내 선택에 대한 자책이었다. 보통의 사람처럼, 평범한 이들처럼, 적당하게 자존심 굽히면서, 듣기 싫은 말을 가끔은 들어가면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적당하게 평균처럼 보통으로 일했다면 나는 다시 월세를 걱정하고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됐다. 피곤에 널브러져 글을 쓰기는커녕 읽지 못하는 날도 수두룩하지만 이 세계는 자본주의니까. 생명이 보장되어야 자아실현도 가능한데 쉽사리 퇴사하고 최저 임금을 받는 직업을 위해 무급 수련까지 준비하냐는 음이 나를 가만가만 타일렀다.
최근에 우리 동네로 왔다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대화가 흔들리는 내 팔을 꽉 붙잡았다.
"그때는 왜 자존심을 못 굽혔어요?"
"제 기질이 그래요. 굽힐 수가 없어요."
"억지로 굽히고 다녔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요?"
고개를 저었다. 낮에 자존심을 굽히고 죄송하지도 않은데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연발하면서 기진맥진 퇴근한 방은 점점 더러워졌다. 설거지 더미에는 날파리가 한둘씩 날아올랐고, 욕실에는 분홍색 물때가 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채 뜯지 못한 박스들이 다시 나뒹굴었고, 새로 물건을 들였다는 기쁨은 한 시간도 지속하지 못했다. 근교에 숙소를 잡아 하룻밤 묵어도, 주말에 공원을 걸어도 머릿속은 일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꾼 꿈은 메일을 쓰는 꿈이었다. 단순히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뭉뚱그린 꿈이 아니라, 또렷하게 메일을 쓰는 꿈. 과장님께, 요청하신 파일 보냅니다. 같은 것. 파일을 열고 장표의 이미지에 커서를 옮기고 작업하는 촘촘한 꿈을 자주 꿨다.
어떤 질문에도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니까요. 못 굽히는걸.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많은 돈을 받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훨씬 적게 받으면서 백만 원을 받는 게 기질인 거예요."
담배도, 여행도, 맥주도 관심 없다. 나는 그저 동네 산책이 제일 좋다. 평생을 한국에서만 지냈던 할머니가 그리도 안타까웠던 내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할 틈 없이 제안서를 쓰고, 나조차 나를 설득할 수 없는 이야기로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는 마음을 쏟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 밖에 있지 못하는데 월세만 칠십만 원이 넘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더는 가벼이 넘기는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대로 살아요."
두 시간에 걸쳐 도착한 오이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나. 번잡스럽고, 소란스럽고, 눈이 시릴 만큼 인위적으로 반짝이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그러면 그냥 뒤를 돌면 됐다.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돌아갔다가.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