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애초에 1주일 경고 차원에서 시작되었던 'Stay Home Order'가 결국 lockdown으로 이어지고 2주, 2주 연장을 반복해오다가 통크게(?) 4주 연장을 발표한 뒤 곳곳에서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심지어 Corona virus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는 특정 지역구는 집 밖 5km 이상 나가지 못하는 명령까지 발효되었다. 애초에 10km 제한도 어마무시한 압박감이 있었는데 이젠 5km라니... 안타깝게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역시 이 특별재난구역(?)에 포함이 되었다는 발표가 났다. 설마설마 했지만 확진자가 급증하는 추세인 지역구의 옆옆 동네인 데다가 이 지역에 집중된 특정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의 생활방식 상 피할 수 없는 단계였다고 본다.
천만 다행이도 집에서 도보거리에 큰 Shopping centre가 있고 그 안에 한인 상점까지 있어서 먹고사는 문제에는 크게 제약이 없는 수준이다. 그 앞에는 어마무시한 costco까지 있으니 뭐..
작년 Locdown 때도 그랬지만 이번 감금생활에도 당연스러운 수순으로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적어도 주 2일은 동네 체육관에 가서 두어시간 정도 운동을 하던 노력들이 중단되고 별안간 무제한의 육체적 자유가 주어지다 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규제조치 시행 후 한 달간 식생활의 거침없는 자유를 누린 후 체중계에 올라서니 작년에 충격을 받았던 숫자를 웃도는 몸무게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잔잔한 타격감이 마음 속에 번져가고...
안그래도 최근 몸에 이상이 왔다는 징조가 몇 있었다. 눈 주위로 벌겋게 피부질환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느껴지는 피로감은 내 몸에 정화가 필요하다는 신호가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더이상 미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번엔 내 몸의 독소도 제거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껴진 터라서 5~6년 전에 한 번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 GM Diet를 실행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구체적인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그 당시 일주일 만에 6kg의 체중감량의 효과를 보았던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Diet를 시작하기 앞두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2일동안 포식을 했다. 하루는 소고기, 하루는 돼지고기로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1주일 간의 수행에 돌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1주일 동안에는 술도, 밀가루도, 설탕도 금지였다.
GM사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만든게 시초라는 이 방법은 일주일 동안 첫 날은 과일(바나나제외), 둘째 날은 채소(감자류 제외), 셋째 날은 과일 + 채소 (바나나, 감자류 제외), 넷째 날은 바나나 6개와 저지방 우유 3잔, 다섯째 날은 지방이 적은 육류 300-600g + 토마토 3-6개 여섯째 날은 지방이 적은 육류 300-600g + 채소, 마지막 일곱째 날엔 현미밥 + 채소. 이렇게 구성이 되어있고 Wonder soup 이라고 양배추, 당근, 양파, 토마토 등 넣고 끓인 맛없는 걸 허기가 질 때 먹을 수 있다. 앞서 말했 듯 술과 설탕은 금지되지만 약간의 소금과 채소나 육류를 구울 때 기름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이 된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그 예전 경험도 어렵지 않았다는 왜곡된 기억(?) 덕분에 이번에도 큰 부담감 없이 시작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미 중년을 향해 가고(아니면 이미 중년이 되버린)있는 비루한 현재의 몸뚱이가 견기기엔 혹독했다.
그 혹독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다.
D+ 1. 과일
사실 이 GM diet가 손쉽게 느껴지는 것은 첫 3일간은 식사 종류에 제한만 있을 뿐 식사량에 제한은 없다. 허기를 느끼지 않는 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랄까? 첫 날은 과일만 섭취하는 날인데 주로 추천하는 방법은 수박을 한 통 사다놓고 하루 내내 먹는 방법이다. 수분 섭취도 되고 배가 금방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곳 남반구의 사정상 수박 보다는 Melon을 선택했다. 같은 박과의 식물이라 효과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귤, 사과와 Melon으로 하루를 버텼다. 허기질 때 마다 귤을 까먹었는데 생각보다 귤이 배가 금방 불렀다. 다만 그만큼 배도 금방 꺼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한이 없다는 조건 때문인지 압박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다만 어제 먹다 남긴 돼지고기 주물럭이 아쉬울 뿐이었다. 한 입 더 먹어뒀어야 하는데...
아내와 동네 한바퀴씩 돌면서 가벼운 운동을 함께했다. 하루에 만보를 목표로 제한된 거리 안에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You tube를 틀고 Home training을 2-30분 정도 하는 수준으로 운동은 마무리하고 나니 그리 어렵지 않은 것 처럼 느껴졌다. 남은 일주일에 자신이 생겼다.
D+2. 채소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들었던 지난 밤을 추억하며 일어나자마자 체중을 재보니 무려 1kg이 줄었다. 출발이 상큼했다.
주로 일어나자마자 음양탕(찬물 + 뜨거운 물) 한 잔을 하고 영양제 몇 알 주워 먹은 뒤 아내와 산책을 나가는게 징글맞은 규제생활의 일과인 관계로 이 날도 산책을 다녀오고나니 참을 수 없을 허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당근 껍질을 깎다가 참지 못하고 입으로 베어무는 모습에 아내가 웃음을 참지못하고 배를 움켜쥔다. 당근 반개를 허겁지겁 입으로 우겨넣어도 허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어린 잎 풀때기를 접시에 담아 겨우 식초 몇 방울과 소금만을 양념으로 해서 먹었다. 그간 먹었던 다양한 Dressing을 향한 그리움은 아마도 Salad는 채소 고유의 맛을 즐겼던 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썻다. 시큼한 쓴 맛의 채소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이제서야 diet의 고통이 시작되는 가 싶었다.
다시마 육수를 내어 콩나물 국을 끓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금 섭취를 금지하지 않아 머리를 써 국을 끓여 먹기로 했다. 허기를 달래줄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그 힘으로 빌어먹을 맛의 Wonder soup을 끓였다. 후추를 너무 많이 넣었나... 매웠다.
명현반응이었을까? 서서히 시작된 두통이 결국 온 몸을 휘감아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더구나 전 날 단 한 번이었던 Home training의 효과로 복부와 장요근에 근육통이 엄습했고 무릎까지 좋지 않아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통제를 먹고 드러누웠다. 그 예전 젊었던 몸뚱이로 이 식이요법을 실천할 때에는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심지어 그 때는 회사에서 일까지 하고 있었음에도 부담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도전한 방법이었는데... 2일차 부터 위기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또다시 주린 배를 움크리며 잠에 들었다.
D+3. 과일 + 채소
희미하게 흔적이 남은 두통을 달고 일어나 체중을 재 보았다. 또 1kg 감량이었다. 아하.. '이대로라면 7kg 감량인가?' 하는 혼자만의 만족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진통제가 효과가 있는지 거동에 불편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 다시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니 또다시 날강도같은 허기가 찾아왔다. 사과로 급한 불은 끄고 지랄맞은 Wonder soup을 한 그릇 하고나니 뱃속이 후끈했다. 아내가 불려놓은 콩이 며칠 째 냉장고에 있는 것을 보다못해 꺼내어 잘게 갈아 희멀건한 콩국을 끓였다. 이것도 한 사발 들이키고 나니 그제서야 살만해졌다.
이 날 부터 였던 것 같다. 최후의 만찬으로 거침없이 먹어제낀 갖은 고기의 영양분이 다 빠져나갔는지 온 몸의 기력이 상실된 느낌이었다. 산책 중에는 늘 몇걸음 앞서 걷던 나였는데 이제는 아내를 쫒아가는 것 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특히 이 날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말그대로 천근만근 같았다. 무심하리만치 새파란 하늘을 보자 10년도 더 지난 군인시절 행군이라는 소금기 넘치는 기억까지 더해졌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이 이런 걸까 싶었던 그 시절이 단지 동네 산책의 경험과 겹쳐지는 듯 했다.
두통 덕에 하루 쉬었던 Home training도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뻐근한 근육들이 아우성쳤지만 그래도 첫 날 보다는 쉽게 느껴졌다.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또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는 가 싶어 바보상자를 켜고 바보노릇을 하며 허기를 잊어보았다.
D+4 바나나 6개 + 저지방 우유 3잔
식사량에 제한이 없는 마지막 날이라 그랬는지 기운빠진 육체에 적잖이 당황을 했던 것인지 전 날 막 들이켰나보다. 아침에 일어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몸무게를 쟀는데 이게 왠걸. 몸무게가 되려 살짝 올라있었다. 등 뒤에서 비웃음을 흘리는 아내가 느껴졌다. 다급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른 뒤 한 시간 쯤 지나 다시 재어보니 전 날과 같은 무게였다.
숫자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시작한 식이요법이었는데 어느새 숫자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였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고작 바나나 6개였지만 이마저도 불안감에 잘 먹히지가 않았다. 아마 이날 6개를 다 채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함이 없는 아침 산책의 일정은, 요 며칠 전부터 약 2km 남짓 떨어져있는 Mcdonald에 들러 coffee를 받아들고 홀짝이며 Shopping centre에 들러 필요한 식자재를 사오는 걸로 변해있었다. 이 날도 다름 없이 coffee를 받아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급격히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사람들이 '당 떨어진다'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어지만 이해가 안되는 1인 이었는데 아마도 이 표현이 이럴때 쓰이는 거라고 요 며칠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 대형 상점에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몇가지 과일을 따로 준비해 두는 바구니가 있었는데 부끄럽지만 그 순간 만큼은 철부지 아이와 다름 없었는 처지였기에 그 바구니에 든 바나나 하나를 급하게 꺼내 먹었다. 잠시 뒤, 무상제공 바나나 덕분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어 급한 마음에 느릿한 걸음으로 집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원래는 저지방 우유를 먹어야 하지만 우리집 냉장고에는 오늘 내일 하고있는 일반 우유가 있었다. 아내는 유당불내증이 있어 우유를 잘 먹지 못하는터라 보통 우유가 집에 없는데 회사에서 휴업을 준비하면서 몇몇 식자재를 집으로 들고왔는데 그 중 우유가 있었나보다. 새로 저지방 우유를 사느니 곧 상할 것 같은 이 일반 우유를 빨리 처치해야 했던 터라 밍밍한 저지방 우유 대신 풍부한 맛의 일반 우유를 먹었다. 대신 살은 덜 빠지겠지 싶었다.
Wonder soup 한 그릇과 우유 한 잔으로 헛헛한 배를 채우고 이층 방 바닥에 누워 체력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는데 별안간 아내가 본인이 먹을 두부 닭가슴살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음식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했고 허기를 자극했던 터라 아내에게 너무한거 아니냐고 투덜댔지만 얄밉게 입술을 삐죽일 뿐이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바나나와 우유 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건 수월했다. 아니면 이미 숫자의 노예가 된 터라서 다음 날 체중계에 올라설 압박감에 뇌를 속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정해진 양을 다 채우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