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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Dec 25. 2021

2021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2차 봉쇄 조치가 내려져 거주지 기준 5km 이상 벗어날 수 없던 시기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빨리 올 해가 지나갔으면...' 

 Covid-19 사태 이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전 세계적 대 재앙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하기만 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구축해놓은 사회라는 구조적 제도를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그 속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지난 시간이 아니었을까? 처음 이 재앙이 시작되었던 2020년 대대적인 1차 봉쇄조치가 시행되고 겪었던 우울증 비슷했던 무기력증이 2차 봉쇄조치 이후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막연하기만 한 이 현실을 기피하고 싶었던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인가 되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계속되고 있었던 것 같다. 


 예방접종 수치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간 덕분에 한 번 풀리기 시작한 규제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억눌린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인 규제 이후 '보복 소비'가 이곳에서도 번져갔다. 다시 영업이 재개된 우리 업장의 경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데도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초 성수기인 12월을 맞아 매주 영업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보통 하루 매출이 3만 불만 넘어도 인상적인 날로 손꼽히는데 12월에 접어들면서 3만 불 매출 달성은 일반적인 상황이 되더니 4만 불을 오르락하던 기록은 3년 전 영업을 시작한 이후 일일 매출 최대 기록인 6.5만 불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 업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돈 쓰기 좋아하는 호주인들인데 국경은 막혀있어 해외여행은 못 가지, 각 주별로 대응 규제들이 달라서 주 국경도 막혀 있는 곳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쪽으로 돈을 쏟아 붓기 시작한 모양새였다. 인력난이 극에 달한 현장의 피로도와는 정 반대로 몰려드는 손님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영업시간을 줄여가는 업장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축포를 너무 일찍 터뜨린 감이 없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 다시금 또 다른 변종이 전 세계를 장악하더니 이곳 호주에도 결국 우세종이 되어 감염자가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지역 봉쇄는 다시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호주 총리의 국가 기조는 변함이 없는 와중에 속속들이 규제들이 다시금 시행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다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예약취소율이 2-30% 수준에서 현재는 절반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내가 일하는 직장은 큰 회사들이 몰려있든 도심지에 위치한 특성상 연말이면 의례적으로 그래 왔듯이 23일부터 영업을 중단하고 사상 최장기간인 3주 반 동안 휴무에 돌입한 상황이라 이러한 상황은 얼추 피해 갈 수 있었다. 


 사실 봉쇄조치가 풀리고 다시 본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와중에도 굵직했던 개인적인 일들도 많이 있었다. 우선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영주권 신청에 필수조건이던 영어시험 점수를 시험 한 번만에 드디어 취득을 하게 되었고 소속된 회사와 합의된 대로 영주권을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웃지 못할 고비가 있었지만 다행히 잘 해결되어 Visa만료 하루 전 날 지난 10년여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고 모든 조건을 따져봤을 때 한국에 영주권 신청 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11월 초에 한국으로 들어가서 본인에게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중이고 10년 여간의 결혼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고 있는 와중에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부부 전체에도 큰 충격을 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내와 떨어져 혼자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면서 stress가 많았던 터라 체중도 많이 줄어 근 5년 만에 최저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정신 사나운 일을 잊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했고 주에 7-80시간 까지 일하기도 했던 것 같다. 본업이 휴무에 들어가는 연말에는 지인의 업장에서 일을 돕기로 하고 일을 늘린 결과였지만 아쉽게도 현재 사태가 다시금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부업은 취소가 되고 본의 아니게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騎虎之勢(기호지세)라는 사자성어처럼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 마냥 나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휴를 맞이하다 보니 날이 쾌청하기만 한 오늘 이 Christmas에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고 있자니 다시금 빨리 올 한 해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물론 삶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날도 있는 반면 안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독 올 해엔 이런 부정적인 일들이 더 크게만 다가오는 것 같다. 10년 숙원이었던 영주권도 신청을 하게 되었음에도 별다른 기쁨이나 환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영혼에 상처가 생긴 느낌이랄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를 상황이라 그냥 무턱대고 이 2021년이라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막연하게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글을 써 내려가며 생각해 본다. 

 2021년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점도 없을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한국에서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고 다시 나는 같은 직장으로 복귀해 여전히 같은 업무를 반복하게 될 것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미래이지만 기대가 되는 점은 영주권이 나오는 순간 나는 현 직장을 떠날 수 있다는 상황이다. 3년이 넘게 한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이 쪽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터라 개인 적으로도 시간이 갈수록 빨리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고 Visa 유무에 따르지 않는 나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내년에는 고국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희망.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라도 어서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커져버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글을 좀 더 자주 쓰겠다는 분명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21년이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많은 글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나의 좌충우돌 이민기도 초창기에 멈춰 선 채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제 영주권도 신청했을 정도로 변화가 있었는데 아무런 정리가 되지 않은 산만한 마음을 이제는 정리를 해보고 이 휴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내서 다시금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또 막연히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인 감흥이 어떻건 간에 이곳 시드니는 예년과 다른 선선한(?) 여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무더위도 멈춰 선 지금 이 시기에 스스로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시기적으로도 잘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 나 혼자 맞는 성탄절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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