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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May 12. 2024

욕심을 버리고~

#2024. 05.12  #worship ##wooridle

특별히 대우를 받으려는 욕심을 포함한 세상을 살아가며 탐하는 것들을 잘 발견해야 한다. 특히 외적인 요소보다 내적인 마음의 욕심 찾아내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말씀의 빛으로 나를 돌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2024년이 되어서 조금씩 내 마음의 욕심을 보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욕심을 버리면 그제서야 채울 수 있고, 채워지는 경험도 할 수 있게 된다.


제목 : 바알을 죽이라

말씀 : 왕하 10:20~27 (김양재 목사님)


MZ세대의 결혼관, 가치관, 경제관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모든 것을 물려주었지만, 바알을 섬기는 것까지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오늘 내 안의 바알을 없애려면??


1. 특별 대우의 예복을 벗어야 합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를 멸하려는 예후의 계책이 시작됩니다. 제1회 바알 부흥회 광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전국에 공고가 내려져서 참석률 100%인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큰 바알 신당이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자들이 이렇게 많았습니다. 아합이 이세벨과 불신 결혼한 결과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일사 분란하게 어제까지 이세벨의 부하였지만, 오늘은 예후의 부하로 전부 모였습니다. 아합의 후손들은 모두 바알을 섬겼습니다. 오늘 예후가 바알을 모두 멸했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알은 성공의 신, 돈의 신, 번영의 신입니다.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들이고 Gold입니다. 바알을 죽이고 또 죽였음에도 바알은 계속 부흥합니다. 그 이유는 바알이 우리 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알의 신당이라고 번역되었지만 바알의 집입니다. 아주 가까이 있고 일상적인 집입니다. 

모든 인간이 잘 살기를 바라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합니다. 성공, 돈, 번영이 우리의 욕심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직장도, 집도, 나라도 해결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다 안됩니다. 그래서 중심 잡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예후는 모인 바알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옳다고 특별 대우 합니다. 잠시 뒤면 죽을 사람들인데 특별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예복을 내어다가 모든 사람에게 주라고 합니다. 구별되고 돋보이게 만드는 옷입니다. 바알 신전에는 이 예복을 보관하는 창고도 있고 관리자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예복을 상당히 많이 준비했던 것입니다. 보통 때는 이 예복을 입지는 못했고 좀 신분이 높아야 입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날에는 이 예복을 모두 입었습니다. 외적인 감각을 만족시켜 주면 무엇이든지 인기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계책의 귀재인 예후의 능력이고, 군중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만인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제사장이 되었다고 믿는데, 이것이 내가 특별하다고 되어서 교회 질서를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공동체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모두 죄인이고 한결같이 교만하기 때문에 질서를 주셔서 훈련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를 높이는 공동체입니다. 인격이 목원이 훨씬 훌륭할 수 있지만, 인간이 100% 틀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 우리끼리 모이면 군중일 뿐입니다. 군중 심리란 별도의 인격 자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질서를 폭력적으로 다 해체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복을 입은 바알 교도의 모습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죽었다고 하니, 어제까지 충성심은 없어졌고, 하루 만에 예후에게 다 모였습니다. 어느 곳이나 100% 찬성, 100% 반대도 이상합니다.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하니 너무 좋은 것입니다. 특별해지려는 욕구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복을 입은 군중 속에 들어가니 자기도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바알을 죽이기 위해서는 이런 특별 대우의 예복을 입으려고 해서는 안되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예복이 무언지 모르고,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받으려고 한다면 내 안의 바알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성도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고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특별 대접이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세상에서 특별 대우를 받으려는 끊고, 벗어 버려야 합니다. 


(적용 질문) 교회보다 더 거룩히 여기며 위하는 모임이나 대회가 있나요? 가족, 골프, 동문, 각종 동호회 모임에서 어떤 특별 대접을 받기 원합니까? 내가 당장 벗어야 할 바알의 예복은 무엇인가요?


2. 여호와의 종과 함께 생명 걸고 적용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예후는 바알교를 믿는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알교를 척결하는 것은 여호나답의 생각에 따른 것 같습니다. 예후는 하지만 여호나답의 지지가 필요했고, 그의 뜻을 받아들여서 바알교를 척결합니다. 

예후, 여호나답이 바알을 섬기는 자들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은 신당 안에 같이 있지 못하게 합니다. 이 둘은 물과 기름 같아서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사람과 너무 잘 지내면 바알교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후가 80명의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신당에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그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정예 부대였습니다. 예후는 이들에게 바알 숭배자들이 바깥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놓치면 자기 생명을 내놓으라고 하고,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고 합니다. 바알 부흥회가 끝나고 나서 모두 그들을 죽입니다. 이세벨이 창 밖으로 던져진 것처럼 이들도 죽어서 밖으로 던져집니다. 

모인 신당 안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렸지만, 마친 후에 이들은 모두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와 거짓 종교의 모습입니다. 욕심을 채우려고 섬기는 사람과 섬김을 받는 사람이 이해타산이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결국 우상을 앞세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소비되고 마는 것입니다. 

욕심에 눈이 가려져서 바알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내 안에 바알을 발견하고 예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결코 꺾을 수 없고, 넘어설 수 없습니다. 예후가 여호나답과 함께 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에서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 둘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예후는 아합의 장관으로 밑바닥부터 바알을 섬겼던 사람이고, 여호나답은 몇 백 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맞는 게 하나도 없지만, 구원의 일에 하나가 되면 다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대통령, 장관도 모두 쓰실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여호나답과 함께한 예후가, 자기와 함께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생명을 걸고 그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구원을 위해 함께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적용하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적용인 것입니다. 하기 싫고 힘든 일을 말씀 때문에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십자가 지는 일꾼 열명만 있으면 오천명도 감당할 수 있다고 목회자 세미나에서 계속 얘기해 왔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적용하려는 한 사람이 있으면 성령이 도우십니다. 열심히 무엇을 하려고 하면 예후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탐욕, 음란, 정욕들의 바알을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한다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적용 질문) 나는 바알을 섬기는 자입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종입니까? 생명 걸고 적용할 일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내놓고 교사, 부목자, 목자, 마을, 초원, 장로, 권사, 목사를 하고 있습니까?


3. 그 근원을 불사르고 헐어야 합니다.

바알은 우리 안에 잇는 욕심을 상징하니 계속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 친근했기 때문이 바알을 섬기기 더 쉬웠던 것이고, 재료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집에 모셔두기도 쉬웠고, 만들기도 쉽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었지만, 없애 버리기도 쉬운 것입니다.

예후가 부하를 시켜 바알 우상을 없애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알의 석상을 없앴습니다. 다윗의 집이 하나님과 하나이듯, 아합의 집은 바알과 하나인 것입니다. 바알의 집은 이제 끝난 것이고, 백성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예후는 변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장 더러운 곳입니다.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바알의 신전이 있던 자리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미 더러워진 신전 터, 변소가 되어서 거기에 다시 신전을 설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알 신당이 변소가 된 것은 오늘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예후 때로부터 300년 이상 된 것입니다. 강력했던 바알 신당이 이렇게 없어졌습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는 저절로 마음이 낮아지지만, 일이 잘 풀릴 때는 마음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형통하다가 사건이 오고 고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드러나는 것은 축복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 증거입니다. 천국 입성 학교인 것입니다. 학위는 인생의 정점인 죽음의 때입니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가 너무 명문이 과정도 길고 졸업도 느립니다. 영원한 영생 학교이니 같이 끝까지 잘 다녀야 합니다. 천국 동창회에서 잘 만나면 됩니다. 밑동 잘린 나무인데 우리 얼마 안 남았습니다.

여기가 예후의 인생에서 쓰임 받는 최후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셨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믿는 여호나답과 함께하여 바알의 신전을 모두 헐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예후는 사실 더 나아가서 금송아지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안 했습니다. 예후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근원인데, 그것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깥에 있는 바알은 모두 죽였지만 내 속에 바알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이 꼭 필요합니다. 말씀이 내 상황을 비추고, 주변 사람을 비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잘 보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말씀의 빛으로 가장만서 내 안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가득한 바알 우상을 보지 못하고, 바깥에 있는 것을 아무리 없애봐야 다시 만들게 됩니다. 근본은 항상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근본의 뿌리는 땅 파는 큐티를 해야 하고, 굳고 완악한 내 마음을 보는 큐티를 해야 합니다.

예후는 중요하고 영적인 이 것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선한 왕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큐티를 하면서 날마다 선택을 하는 훈련은 엄청난 인격을 쌓아가는 엄청난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우리 안에 숨어있는 바알 우상들을 모두 찾아 회개하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성령 강림주일이니 모두 회개하면 좋겠습니다.

예후가 구속사를 모릅니다. 세속사는 최고인데, 이것은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안의 바알을 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바알의 목상처럼 이제는 불사르고 헐어야 할 나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는 가까이 가기 싫은 변소로 만들기 위해 이번 한 주 어떻게 불사르고 헐어 버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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