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종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겟 아웃>이라는 영화가 있다. 인종차별과 최면이라는 소재를 함께 다룬 재밌는 영화다. 코미디언 출신의 감독이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멋지게 영화가 되었다. 영화가 막바지로 향해갈 수록 생각나는 다른 영화가 있었다. 내겐 별점 5점 짜리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다. <겟 아웃> 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막바지에 가까워질수록 그려지는 비극적 결말이 닮은 꼴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에는 <겟 아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을 통제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크레이그는 길거리를 전전하며 꼭두각시 공연을 선보이는 변변찮은 인형사(puppeteer)다. 크레이그는 우연히 유명한 배우, 존 말코비치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한다. 여기서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존 말코비치의 정신에 들어간 크레이그는 인형술사의 재주를 살려 존 말코비치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아낸다. 음울하고 소심한 크레이그는 말코비치를 조종하면서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된다. 존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간 크레이그는 스스로는 해본 적 없는 대담한 일들을 해나간다. 크레이그가 꿈꿨던 '유명한' 인형사가 되는 꿈은 말코비치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 극 중에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는 원하는 것을 좇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열정적으로 원하는 걸 좇는다고 해도, 그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사람은 죽기전에 후회는 없을거에요.
Mark Granovetter 라는 사회학자는 재밌는 개념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름하야 "문지방(Threshold) 이론"이다. 여기서는 <다윗과 골리앗>, <아웃라이어> 등 성공을 사회학으로 풀어낸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팟캐스트 에서 소개된 예를 빌려보겠다.
'길거리에 1,000 명의 폭도가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경우와, 10명의 폭도가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경우가 있을 때, 길가에 서 계신 할머니가 폭동에 동참할 가능성은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이 때, 할머니를 폭동에 참여시킬 정도의 규모를 Threshold, 문지방이라고 한다. 좀 더 간단한 말로, 어떤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외부적, 내부적 상태를 말한다 .
이 예는 삶에도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문지방을 경험하며 산다. 수업시간에 손을 드는 것도 문지방이고 처음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문지방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도 문지방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Threshold(문지방) 를 갖고 산다. 누군가는 문지방을 쉽게 넘나드는 반면에, 누군가는 매번 문지방 앞에서 주저앉고 만다.
절박한 세일즈 맨이 있다. 판매 중인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그는 그의 곱슬머리 아들과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 그 세일즈 맨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이전처럼 여유롭게 기업 대표들과 약속을 잡고 식사를 하면서 제품의 장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인들에게라도 제품을 홍보하거나, 친구들에게 쪽팔림을 무릎쓰고 제품을 소개하는 등, 평소에는 ‘면’이 서지 않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것이다.
문지방을 넘는 것 자체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행동은 지나가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일 수도, 할머니의 예처럼 폭동에 동참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넘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확실한 건,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문지방을 넘어서면 언제나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강연(TED 같은)을 보면서 우리는 문지방을 넘는 삶을 상상한다. 직장을 떠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세계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쓰며,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친구가 되는 상상들이다. 하지만 문지방을 넘는 일은 벅차고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 영화 <겟 아웃> 을 소개한 이유는, 문지방 넘기를 방해하는 것들을 짚어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주저한다. '부모님은 이걸 싫어하실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 커리어가 흔들리면 어떡하지' 이 모든 것들은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고 어쩌면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다시 <존 말코비치되기>의 대사를 복기해보자.
세상에는 원하는 것을 좇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열정적으로 원하는 걸 좇는다고 해도, 그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은 적어도 죽기전에 후회는 없을거에요.
사회적 기준과 관습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하는데 낭비한 내가 배운 것은 방황하는 것보다 빨리 시도한 다음에 부딪히고 튕겨져나오는게 낫다는 점이다. 조종당하기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길을 가려면, 문지방을 넘어 나가야한다. 지금 문지방을 넘어서 GET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