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

나에게 아홉 켤레 구두는 무엇일까.

by 빛글사랑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었다. 세 번째 읽는 책이라 이번에는 관점에 따라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리 해석되었다. 아리송한 질문에 정답은 보이지 않았고 인물들의 갈등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각기 입장 차이가 있었다. 이순경이 바라보는 권씨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주동자이자 전과자였다. 권씨는 활기차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 열심히 구두를 닦지만 현실은 전과자란 딱지로 취업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주인공 오선생이 바라본 권씨는 어땠을까. 세입자로 이사 오는 첫 날부터 불안했지만 경우가 바른 사람이고, 근본이 있는 사람, 대학을 나왔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선생 마누리로 오선생 아내가 겪어야 했을 아내의 고충은 고향을 벗어난 타관살이의 고충이었다. 신혼 때 오산에서 타관살이를 한 나의 경험 덕분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램과 디킨즈의 삶, 과연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권씨가 오선생에게 아내 병원비로 십만 원을 빌리러 갔을 때 쉽사리 승낙을 못하고 속으로 계산하던 오선생은 디킨즈의 삶을, 자존심을 바닥까지 내려놓고 오선생을 찾아간 권씨는 램처럼 오선생에 대한 작은 믿음이 있었으리라. 누군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램과 디킨즈는 함께 동거하고 있다. 램과 디킨즈는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 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현장에서 권씨가 출판사에 다니는 디킨즈의 삶을 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작가 윤흥길은 이 소설에서 인간의 본능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을까. 권씨에게 아홉 켤레의 구두는 자존심이고 본능이지 않았을까.


나에게 아홉 켤레의 구두는 무엇일까. 가족, 건강, 글쓰기, 동료, 관계, 소통, 꿈, 노후, 재테크 그리고 나 자신이다. 책의 마지막에 권씨가 아홉 켤레의 구두를 두고 떠난 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램처럼 순종적인 삶을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한민국의 아줌마로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거칠고 과격해졌다. 행동하는 램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현실에 만족하기 위해 구두를 닦고 닦았지만 채워지지 않던 권씨의 쓸쓸함처럼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이유를 찾았다. 반복되는 글쓰기는 어느 순간 이유 없는 습관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인스타로, 인스타에서 브런치로. 플랫폼을 확장하며 숨은 잠재력을 찾아갔고 서서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겼다.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빛날 수 없다. 권씨가 정의로움에 불타 자신이 전혀 원치 않던 일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한 것처럼 정의로움에 불 탄 경험이 있을까. 그건 혼자의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과 처음 독서를 시작했을 때 함께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오래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각자의 고민으로 모인 우리는 같은 책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고 서로의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입장 차이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로 편안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른 이의 슬픔을 토닥이며 내가 치유되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상대를 위로하며 용기를 얻었다.


2023년 7월,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램과 디킨즈는 무슨 말을 건넬까. 우리는 비대면에 익숙해져 점차 사회성에 무뎌지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커지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공부하고 배운 걸 나눌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 정신을 키워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이 아닌 우리의 말과 행동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수정도서관에서 진행하는 <4050 중장년 독서살롱>을 통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다시 읽으며 과거로 돌아가는 독서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 확장하는 독서토론이 되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