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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농사를 2배 하면 돼~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1기 이동우


전자기기의 성지에 불쑥 등장한 농부의 친구, 존 디어


  미국소비자기술협회는 매년 CES(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라 불리는 전자·IT 전시회를 개최한다. CES는 인텔, 삼성전자 등 IT업계에서 최전선을 달리는 기업들이 신제품을 발표할 정도로 분야 최고의 전시회로 인정받는 행사이다. 그런데, 내년 열리는 CES의 기조연설자로 존 디어(John Deer)의 최고경영자가 선정되었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이 행사에 참여했으며 최근 2년에는 ‘최고혁신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런데'라는 접속사를 썼냐 하면, 존 디어가 최첨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기계 전문 업체라는 점이다.

존 디어(John Deer)는 1837년 설립하여 트랙터, 수확용 기계, 파종기 등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중장비 농기계 업체다. 농기계를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32%에 달한다. 농업 분야의 오래된 회사라고 하면 다소 올드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존 디어는 탄탄한 기술력과 반짝이는 비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존 디어가 어떤 기술들로 농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CES 존 디어 부스의 전경 (출처: phys.org)

생산성의 문제: 밥값이 오르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기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농업에서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은 투입물로 양질의 산출물을 얻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생산성일 것이다. 어떤 산업이건 중요한 요소이지만 농업에서는 최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의 농업의 노동인구는 고령화되고 있으며, 노동 비용은 지난 5년 동안 약 20% 증가했다. 이는 미국만이 아닌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5년간 노동 비용의 증가 (출처: 세인트루이스 연준)


 반면, 세계의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현재에 비해 약 25억 명이 늘어난, 100억명의 사람들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존 디어의 CTO에 따르면,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농부들은 에이커당 생산량을 50% 늘려야 한다. 사람에게 필수적인 식량을 다루는 농업에서, 투입물의 부담이 커지는데 산출물의 수요까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전 세계 밀 공급량 30%를 담당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며 식량 위기는 점점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50년까지의 예상 세계 인구 (출처: Pew Research)


 역사적으로 농업에서의 생산량을 높인 건 농업 기술의 발전이었다. 농기구의 등장은 여분 생산량을 만들어 씨족 사회를 발전시켰고, 가축의 이용은 농업에서 인력 수요를 ⅓ 이하로 줄였다. 산업혁명 이후 개발된 농기계는 생산량을 급격히 증가시켜 늘어난 유럽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식량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이 있겠지만, 기술은 그중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존 디어는 최근 모든 산업을 뒤바꾼 인공지능과 데이터과학의 물결을 농업으로 끌어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올해 공개된 자율주행 트랙터는 새로운 농업을 위해 존 디어가 꿴 첫 단추 중 하나이다. 트랙터에는 여섯 쌍의 카메라가 달려있어 360도를 모두 볼 수 있다. 하늘과 땅, 농작물 외의 것들에 대한 이미지들까지 학습시켜 사람이나 가축 등이 갑자기 앞을 지나가도 안전하게 멈춘다. 인공지능 기술에 더해 계속해서 축적해온 기계공학, 위성항법시스템(GPS) 기술이 담겨 완성도가 높다.


 조종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가능하며, 주유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기존에 비해 필요한 노동력이 현격히 적다. 거기에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아 기존에 12~18시간 가동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많게는 배 이상의 작업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존 디어의 관계자는 한 인터뷰에서 생산성을 최대 20% 높일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랙터는 올해부터 바로 시범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존 디어의 자율주행 트랙터 (출처: Quartz)



환경의 문제: 농사는 지구를 해치고, 아픈 지구는 농사를 망친다


 다시 농업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한 욕구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해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염려가 높아지며 농업에서도 환경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업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경로는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다. 이들은 땅을 산성화시켜 토양 속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러한 피해는 계속해서 축적되어 토양의 유기물과 영양소를 고갈시키고, 결국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만든다. 실제로, 최근 네이처지오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세계 농업용지의 2/3의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의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존 디어는 최적화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솔루션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비옥화 계획 개발 프로세스는 적은 양의 토양 샘플을 추출, 분석하여 토지에 필요한 비료의 종류와 양을 결정해준다. 또한, ‘see & spray’라 명명한 제초 기술은 컴퓨터 비전 기술로 잡초에만 선별적으로 제초제를 뿌릴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솔루션은 농부들의 비용 부담도 줄여준다. 회사 측은 ‘see & spray’를 활용하면 제초제 비용을 77%까지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농업과 환경의 연결고리는 많으며, 존 디어 역시 다양한 경로로 환경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존 디어의 인공지능 제초기 (출처: Quartz)



새로운 BM


 중장비 기계를 만드는 기업이었던 존 디어는 자율주행 기술, 화학 물질 사용 최적화 기술을 적용한 것처럼 농업에서의 여러 상황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비해 한 번 개발하면 추가로 필요한 비용이 적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번스타인(Bernstein)의 애널리스트는 장비 판매에 따른 평균 매출총이익은 25%가량이지만, 농업 소프트웨어에 따른 매출총이익은 85%에 달하리라 추측한 바 있다. 존 디어의 CEO인 존 메이는 2030년에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수입이 자사 총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리라 전망하는 등 기존 장비 판매와 차별화되는 수익원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들어가면 농부들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자율주행 트랙터의 대당 가격은 최소 약 3억 원으로 비싼 편이다. 그러나 기존 트랙터에도 자율주행 알고리즘 업데이트가 가능하며, 구독경제 형태로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 있기에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적어지리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인건비 절감, 생산성 증대 효과가 있기에 시장의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존 디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농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발전 속도가 느리고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 적용 사례도 매우 적은 분야였다. 여기에 더해 거대한 몸집과 역사까지 지닌 존 디어가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한 자기 파괴와 재창조가 있었다.


 2014년 있었던 농업경기 침체는 존 디어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쳐 전 분기 대비 15% 매출이 감소했다. 그러나 존 디어는 이를 애그리테크 전문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전통 농기계 생산 부서에서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한 후, 최근 5년 동안은 58억 9,000만 달러를 들여 12개 기업을 인수합병했다. 디어&컴퍼니가 M&A한 회사 중에는 GPS 기술업체 나브콤, 자율주행업체 베어플래그, 자율 제초제 살포 기술을 개발한 블루리버테크놀로지 등이 포함됐다. 앞서 본문에서 언급한 여러 기술도 이러한 인수를 통해 새로운 인력을 수혈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보인 비전이 인정받아 존 디어의 기업 가치는 꾸준히 우상향을 해왔으며, 최근의 자율주행 트랙터와 화학 물질 사용 최적화 기술의 출시는 시장의 기대를 더욱 키웠다. 그러나 존 디어는 몇 개의 제품에서 만족하지 않고 통합 농업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꿈꾼다. 존 디어는 이미 오랜 기간 농기계를 판매하며 축적해온 농업 기술, 토질 자료 등 농업 운영에 필요한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작물 정보 분석 기반 솔루션, 이상 감지 솔루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존 디어가 꿈꾸는 것은 그다음 단계이다.


 현재 출시된 기계들은 어찌 되었건 어떤 동작을 얼마나 할 지 사람의 설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업에서 자동화 농기계가 대체하는 과정이 늘어나고, 이 기계들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수합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속해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플랫폼이 도출해낸 결과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트랙터가 밭을 갈며 토지 정보를 분석해 추후 비료살포기의 살포 빈도를 조절한다든지 등의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즉, 자동화하는 영역의 확장은 곧 플랫폼 속에서 데이터가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존 디어는 농업 관계자들의 모든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제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앞으로 존 디어가 보여줄 새로운 형태의 농업을 기대해본다.


연세대 컴퓨터과학 이동우

dongwoolee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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