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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맛이 어떠냐?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4기 박준형

‘소주’

이 두 단어는 누구에게는 강력함을, 더 나아가 누군가에겐 ‘폭력성’을 심어주기도 한다. 와인이나 위스키를 먹으면서 싸울 때는 ‘자네… 이제 그만하지’라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소주를 먹으면서 싸울 때는 더 험한 말이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만큼 소주는 우리의 가장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좋은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으며,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기도 했던 그런 술이다.


그런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최근 또 낮아졌다. 이제 소주를 소주라고 할 수 있나 이는 마치 패션 트렌드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사실 이런 알코올 도수의 변화는 비단 최근 몇 년 동안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1924년 35도로 시작된 진로 소주는 현재 16도 이하로 낮아졌으며, 이는 단순한 도수 변화가 아닌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경제적 이유, 그리고 규제 환경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소주는 단순한 주류를 넘어, 한국의 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


이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주 한 병에 담긴 현대 한국인의 삶과 트렌드가 얼마나 복잡하고 흥미로운지 알 수 있다. 과거의 소주는 스트레스 많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였지만, 오늘날의 소주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변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도수를 낮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술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소주 도수가 왜 지속적으로 낮아지는지, 그리고 소주 업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도수가 낮아진 소주 한 잔을 들고, 그 속에 담긴 비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음미해보도록 하자.



왜 소주의 도수는 계속 낮아져왔을까?


1. 소비자 선호 변화

많이 달라졌다. ‘소주는 빨간 뚜껑이지’하는 말은, 이제 꼰대들의 부르짖음에 불과하다. 즉, 소비자들의 음주 습관과 기호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도수의 소주가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에는 저도수 소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더 높은 도수의 소주를 찾는 경향은 과거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으며, 반면 더 낮은 도수 혹은 소주의 역한 맛이 안 나는 소주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을까.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Healthy Pleasure'를 추구하며,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제로슈거’라는 트렌드를 중심으로 소주에 들어가는 과당을 대체당으로 바꿔 출시한 ‘새로’의 성공은 이를 대표하는 예시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역설적이게도 ‘건강을 위해 저도수 소주를 먹는다’는 것이다. 사실 건강을 중시한다면 소주를 안 먹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 답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술을 찾는다’라고 볼 수 있다. 술은 우리의 힘든 시간 혹은 기쁜 시간을 함께 보내온 동반자와 같았다. 기존의 관성 때문에 술을 찾는 습관을 크게 바꾸기는 힘들지만, 무슨 술을 찾는지는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전반의 음주 문화 변화 역시 이런 흐름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단체 회식 문화의 쇠퇴, 혼술족의 증가처럼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지 않고, 본인의 취향과 주량에 맞게 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술을 찾지만, 내가 알아서 원하는 걸 먹는 것이다. 그만큼 기존의 고도수 소주를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게 되고, 소주 업계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도수를 낮추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2. 원가 절감

신기하게도,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제조 원가가 절감된다. 소주 도수를 0.1도 낮출 때마다 약 0.6원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다. 20도 짜리의 소주를 16.8도로 낮추면, 병당 18.6원의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소주 가격을 무분별하게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이 도수를 낮춰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원가 절감은 소주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3. 광고 규제

1995년 발효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17도가 넘는 술은 지상파 TV와 라디오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광고를 할 수 없다. 이는 소주 제조업체들이 도수를 낮추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이다. 참이슬 후레쉬가 도수를 17도에서 16.9도로 낮춘 사례가 이러한 규제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광고는 소주 브랜드에 큰 영향을 준다. 아이유의 ‘참이슬’, 제니의 ‘처음처럼’과 같이 말이다. 이처럼 광고 규제는 소비자에게 소주를 홍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소주의 저도화는 필연적이었다.


4. 시장 확장을 위한 전략

소주의 저도화는 판매량 증대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낮은 도수의 소주는 쓴맛이 덜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 더 많은 양을 소비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19.8도짜리 소주가 출시되었을 때 연간 소주 출고량은 96만 kL로, 전년 대비 3만 kL 증가했다. 이러한 패턴은 소주 도수가 낮아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 즉, 도수를 낮추는 것이 소비량을 증가시켜 판매량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소주의 저도화는 결국 저도수 술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소주의 저도화 트렌드는 소주가 다른 저도수 술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까지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주 도수가 14도 정도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더 낮아지면 소주의 특유의 쓴맛이 없어져 ‘소주’만을 찾는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인해 소주가 탁주의 자리를 위협하며 대중화에 성공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 소주의 저도화는 기존 저도수 술 시장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을 것이다. 저도수 소주의 인기는 기존의 저도수 술(청하, 매화수 등)과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도수가 같아지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주 업계는 부드러운 맛을 내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소주가 기존의 저도수 술 시장을 잠식하고,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소주 업계는 저도화의 흐름 속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1. 제품 측면에서의 방향

    도수 선호 양극화 현상에 대응  

소주 업계는 저도수 소주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다양한 소비자층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 라인을 다양화해야 한다. 고도수 소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한 프리미엄 제품과 저도수 소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맛과 향의 저도수 소주를 동시에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도수 선호 양극화 현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 및 현지화  

‘소주를 한국 시장에서 잘 파는 것’이 중요할까?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한국 소주는 이미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 소주 업계의 고민을 해결해줄 키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지화된 맛과 마케팅 전략을 통해 각국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향신료나 과일을 사용한 소주를 개발하여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  


2. 고객 측면에서의 방향

    소주 페스티벌  

소주 페스티벌은 소주 브랜드가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소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이벤트로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소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이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 요소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례로 오비맥주는 초대형 야외 콘서트인 ‘카스쿨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고객 경험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페스티벌’이라는 플랫폼 속에서 소비자들이 소주를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술집 브랜드 런칭  

단순히 소주 판매를 넘어, 소비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소주 제조업체가 직접 운영하는 술집이기 때문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통해 브랜드의 스토리를 전달하고,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술집에서만 즐길 수 있는 한정판 소주나 특별한 메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술집 브랜드 런칭은 또한 소주 업계가 직접 소비자 피드백을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일 수 있다.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제품 개발 및 마케팅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마치며

소주 도수의 저하는 소비자 선호 변화, 원가 절감, 광고 규제 등의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소주 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고, 건강과 웰빙을 강조한 전략을 펼치며, 궁극적으로는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도 검토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소주가 단순한 술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산업공학과 박준형

pjhred9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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