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으로 흐르던 에너지를 실행력으로 전환한 질문 루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여자 선택에서 마지막 순서인 현숙의 차례가 다가왔다. 마음에 있던 남자가 아닌, 자신에게 꾸준히 대시해 온 남자를 미안함 때문에 선택한 그녀는, 그 후로도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을 진심으로 착각한 남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현숙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현숙이 바로 나의 극대화된 버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안함과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진심이 아닌 선택들을 해왔다. 늘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고, 관계 안에서 누군가가 실망하거나 불편해하면, 그 원인을 내게서 찾았다. 스스로를 비난하며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말로 나를 조용히 몰아세우는 방식에 익숙했다. 표면적으로는 '책임감'이었지만, 그 밑에는 갈등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있었다. 그 갈등이 나를 흔들거나 관계를 깨트릴까 봐 먼저 나를 조율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일상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그러나 전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어떤 대가가 따를 수 있을까?
만약,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1년 후,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변화를 향해 나를 이끄는 것과,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변하는 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이 변화는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 질문들만으로도 변화의 여정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더 깊은 변화를 원한다면, 다음 편에 다룰 전문코치로서 실제 활용했던 구체적인 질문 프로세스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 전화벨은 나에게 비상경보였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며 '또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내 신경계가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자책으로 인한 불안이 디폴트였던 뇌가 평온을 기본값으로 재설정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예전엔 전화받기 전에 이미 10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지금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도 내 책임부터 찾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마음가짐 변화가 아니었다. 불안으로 현재를 망치지 않는 새로운 인지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에서 문제와 춤추는 사람으로의 완전한 전환이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내 자책감이 실패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자책감은 "더 성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나는 '갈등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것은 완전한 오해였다. 어린 시절 내가 자라온 환경은 큰소리와 갈등이 일상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갈등을 두려워하는 것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나는 꽤 잘해왔다는 것이다. 내가 자책감에 빠질 때마다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사실 나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버텨낸 사람이었다. 질문들을 통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숨겨진 마음을 깨달았다.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내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싫은 것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건강하게 마주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연습해야 할 새로운 삶의 기술들이다.
자책감으로 시작된 이 질문의 여정이, 결국 자기 수용과 진정한 성장으로의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과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관계를 맺는 법, 나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변화의 동력을 얻는 법을 연습하며 더 자율적이고 따뜻한 나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변화는 언제나 '이득만 있는 선택'이 아니라, 익숙한 나와 이별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숨겨진 용기가 더욱 선명해지길 바란다.
다음 편에는 나를 정말로 바꾼 구체적인 질문들과 전문 코치로써, 스스로 코칭하는 과정을 써보려고 한다. 물론 이 질문들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 나는 전문 코칭 과정을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이론공부와 오랫시간의 성찰 과정을 통해 이 질문들의 효과를 보았지만, 모두가 처한 상황과 깊이는 다르다. 그러나 나처럼 자기 비난과 감정에 붙잡혀 실행력을 잃어가는 분들에게, 이 질문들이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시작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by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