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모임, 그만둘까 VS 다시 갈까
지난 글에서 독서모임에서 느꼈던 묘한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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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건,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분위기에 맞추려고, 기대에 부응하려고 나답지 않은 말들을 골라내고 있던 그 순간들이 나를 점점 지워가고 있었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그 묵직한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버릴 수도 있었지만, 직면해 보기로 했다. 그 감정을 붙잡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그 자리에서 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이런 물음들이 셀프코칭의 시작이었고,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나다움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독서모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다양한 관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바란다. 정답이 아닌, 입체적인 해석이 오갈 수 있는 안전한 대화의 장.
공감이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내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나다움을 지키는 길이다.
내 나름 열심히 설명했지만, 오답이더라도 하나의 의견으로 수용될 줄 알았다. 그러나 리더자의 반응과 표정을 보고 내 메시지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 주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 책에 나와있는 정답도 좋지만, 예외의 상황도 있을 수 있기에 다양하게 의견을 나누고 싶은 것, 그리고 의견이 다를지라도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 나의 본질적인 메시지이다.
타인의 공감과 인정, 동의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것들에 내 존재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다양한 의견이 수용받는 안전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권리도 상대방에게 있다.
내가 느낀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실제 누군가의 명시적인 무시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면적으로 지닌 ‘공감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그 자리의 리더나 참여자들은 단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했을 뿐이며, 나의 존재를 평가하거나 거절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경험은 타인의 반응에 내 존재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내 감정과 해석을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연습이 될 수 있다. 그 불편함이 말해준 것은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감받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나의 가치였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수치심을 느낄 이유는 없다. 내 감정과 생각은 여전히 소중하고, 나의 존재는 누가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맞추느라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다움을 지키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나답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나에게는 공감을 얻는 것이 자연스럽게 더 중요하게 된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다. 이런 내 모습을 감싸주되, 나답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기에, 타인의 반응도 내 경계를 넘지 않는 한 소중히 다루고 싶다. 즉. "진짜 공감은 상대가 내 말에 일방적으로 동의해주는 게 아니라, 나와 상대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의견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해보고자 한다.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의견이 나에게 중요한 감정과 통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가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되, 내 의견도 내 안에서 존중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지켜내고 싶다.
조직이나 공동체 안에서 내 의견이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며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무조건 상대방 탓을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여유는 동의받지 못한다는 작아진 내 감정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닌, 상황을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그 시각으로 내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독서모임을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셀프코칭을 통해 내 마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막연하게 기분이 나빴던 감정의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비로소 이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피하고 싶었던 모임은 이제 다시 한번 용기 있게 참여해보고 싶은 도전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감정의 정체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불편함은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였던 것이다.
어쩌면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은 불편함 속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by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