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아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후
말이 씨앗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뿌리내릴 자리가 있다면 자라고,
메마른 땅에서는 그저 침묵으로 남는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의 일이다.
책을 읽고 각자 느낀 점을 나누는 자리였지만, 어느새 분위기는 '옳은 답'에 가까운 발언이 환영받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리더의 미묘한 반응들이 만들어낸 무언의 기준이었다. 누구의 해석이 더 적절했는지를 가늠하는 시간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나는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고, 그 공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모임을 마친 후에도, 찜찜한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했을까?"
단순히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 '내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건네는 말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반응들 앞에서 말이 아니라, 내가 작아지는 감각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감정까지 느낀 걸까?”
“그 자리를 통해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깨달음은 예상외로 명료했다.
그날의 불편함은 누군가의 공격이나 비판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주최자가 원하는 답안을 제시하기 위해 내 본연의 목소리를 은밀히 감추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온전히 드러내며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설령 내 발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 침묵이 더 이상 나를 위축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관점을 전환했다.
내가 말하는 목적은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내 고유한 감각을 존중하면서도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되, 나 자신을 감추지는 않는 것.
내 말이 수용되지 않는다 해도 더 이상 작아질 필요가 없다는 것.
내 직관이 틀리지 않았으며, 그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낸 나만의 성찰적 질문들을 다음 글에서 나누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