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글로 남기는 마음

by 빛날애
하루나 이틀 꽃은 피었다 지지만
마음속 숨긴 꽃은 좀 더 오래간다
글이 된 꽃은 더 오래 지지 않는다
지지 않는 꽃 _나태주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두고 이른 시간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흩어진 식물들을 제자리에 놓아주고 고요한 스터디존을 천천히 훑는다. 이른 새벽부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 정직한 등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커피를 내리는 대신 둥굴레차 티백을 뜯었다. 요즘 부쩍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이다. 뜨거운 물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티백을 한참 바라본다. 나의 첫 동력이 되어준 곳, 소중한 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 나는 이 공간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게 될까. 차 한 모금을 머금고 오래 멈춰 서 있었다.


사는 일도 글과 닮았다. 매일 비슷하게 흐르는 것 같아도 어제와 오늘은 미묘하게 다르다. 글은 늘 처음 마음먹은 방향을 배신하고, 믿었던 이는 예상치 못한 얼굴로 다가온다. 실망과 웃음이 뒤섞인 채 하루가 저물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일에도 마음이 세차게 흔들리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처럼 삶도 원래 그런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요즘은 내려놓기 연습을 한다. 조금은 대충 살자고. 대충 살아도 밥은 먹고, 웃을 일은 생기고, 불면의 끝에서도 기어코 잠은 찾아온다. 큰 행복 한 번보다 작은 행복 여러 번이 사람을 더 오래 버티게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가끔은 게으르게 살고 싶다. 예전에는 게으름이 꼭 패배처럼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게으름은 무너짐이 아니라 나와 세상 사이에 작은 틈을 두는 일이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고 햇살이 어깨를 덮는다. 그 한 뼘의 틈이 있어야 복잡한 삶도 견딜 수 있다.

오래전 한 친구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아등바등 사느냐고. 그 질문이 서운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은 내 마음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준 말이었다. 이제는 그 말이 고맙다. 꼭 넓은 바다를 다 알아야만 잘 사는 것일까. 우물 안 개구리여도 괜찮다. 내 우물 안에서 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지 않을까.




엄마가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선언이었다. 약해 보였던 나는 엄마가 된 뒤 생각보다 강해졌다. 이유식 하나도 손수 만들어 먹이며 완벽한 엄마가 되려 안간힘을 쓰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온전한 우주였다는 것을. 아이와 살결을 부비며 울고 웃는 사이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옹알이를 하던 아이는 어느새 내 키만큼 자라 저만치 걸어간다. 꼬순내 나던 작은 발과 나를 찾던 간절한 눈빛들. 그 모든 순간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겹도록 소중해진다. 훌쩍 자란 아이들 뒤로 바람이 분다. 나는 여전히 비슷한 자리에서 삶을 배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는 것, 조금 느려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어 천천히 펴본다.

오늘 밤, 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좋다. 이제는 그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으므로.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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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우물을 파며 살아갑니다. 그 안이 조금 좁고 외롭더라도,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하늘이 당신에게도 다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정도는 당신도 부디 너무 애쓰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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