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요즘 글 자주 쓰네?”
남편의 물음에 잠시 멈칫하다 대답했다.
“응, 그러게. 요즘 글이 내 유일한 숨통이거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마음일까. 잘 쓰고 싶은 욕심은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유려하면서도 담백한 글, 잔잔한 통찰을 건네는 글.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늘 간절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그런 글은 결심만으로 지어 올릴 수 있는 성벽이 아니라는 것을.
재작년, 이곳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 전공자도 아닌 내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왠지 민망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던 작년. 운 좋게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소식을 꺼냈을 때, 돌아온 누군가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어머, 잘 됐네. 빛날씨~ 근데 요즘은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잖아. 하하.”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싶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아, 하하.... 네, 그런가요.”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는 그녀였기에, 그 가벼운 한마디는 더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나의 시간들. 정성껏 빚어 올린 자존감의 뼈마디를, 그 말 한마디가 잔인하게 찔러 와르르 무너뜨렸다. 옳은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출간을 앞둔 내 앞에서, 축하 한다는 한마디 없이 그토록 웃으며 내뱉어야 했을까. 대체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기에. 그녀를 등지고 돌아오는 내내, 찜찜한 잔상이 그림자처럼 발밑을 따라붙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적막한 방 안, 닫힌 문틈으로 비로소 슬픔이 둑 터지듯 밀려들었다.
하지만 무너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책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내 글을 세상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내 곁의 고마운 사람들을 한 번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였고, 나를 진심으로 아끼지 않는 이들을 걸러낼 수 있는 투명한 타이밍이었다. 비로소 나를 살리는 문장들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선명해진 것이다. 이제 나는 완벽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내려놓고, 고마운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매번 글을 쓴다.
화려한 수사(修辭)를 쥐어짜는 대신,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소소하지만 깊은 나의 고백들.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분명한 의미를 지닌 삶의 조각들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삶을 다시 문장으로 옮기고 싶다.
무기력이라는 불청객이 숨 쉬듯 문을 두드리기 전, 나는 밤마다 노트북 앞에 앉는다. 쓸 거리가 없어 멍하니 모니터만 응시하는 날이면 고개를 들어 방 안을 찬찬히 훑어본다. 책상 위에 쌓인 책들, 밑줄 그어진 문장들, 책갈피 사이의 빛바랜 메모들. 그 틈새에서 잠들어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그 흐름을 타고 나는 나만의 ‘대나무 숲’ 브런치에 접속한다.
이곳은 마음껏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나처럼 각자의 삶을 아끼며 자기만의 속도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네모난 화면을 빼곡히 채운 글자들은 깊고 푸른 바다 같다. 그 바다를 천천히 유영하다 보면 타인의 진심에 안도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숨을 쉰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흩어져 있던 내 삶의 조각들이 이곳에서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치 마지막 퍼즐을 조용히 맞춰 가듯이.
어느덧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타닥타닥 춤을 춘다. 머릿속을 휘젓던 복잡한 생각들과 누군가의 무심한 말들을 조용한 리듬의 소리로 바꾸어 놓는 작업. 나는 그 소리가 참 좋다.
타닥타닥, 밤을 깨우는 작은 춤의 소리.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그 소리 끝에서 마침내 진짜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글로 옮기지 못할 삶은 없다.
당신의 삶 또한 그러하다"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_봄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