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의 캠퍼스는 늘 과하게 청량했다. 치마 끝자락을 살랑이며 5cm 높이의 구두를 신고 언덕을 오르던 날들. 발가락 끝이 저려오는 통증조차 훈장 같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2cm 구두도 버거워 가장 편안한 운동화만 골라 신는 아줌마가 되었지만, 벚꽃이 분분히 흩날리는 교정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때의 햇살, 바람, 그리고 속절없이 터져 나오던 웃음들. 모든 것이 유난히 반짝이던 계절이었다.
여중과 여고를 거쳐 도착한 간호학과는 익숙한 풍경의 연장선이었다. 낯선 의학용어와 해부학 책에 파묻혀 지냈지만 우리는 늘 함께였다. 시험 기간 도서관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서로의 어깨를 빌려 단잠을 자고, 눈을 뜨면 다시 서로를 보며 웃었다. 돌이켜보면 치열했던 공부의 기억보다 무구했던 웃음의 잔향이 더 짙게 남아 있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강의실 뒤편에서 꾸벅꾸벅 졸다 교수님의 눈길을 피해 서로를 찌르던 손가락, 국가시험을 앞두고 모인 강의실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보다 크게 울리던 수다 소리.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웃음 속에서 속절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눈부신 찰나라는 것을. 청춘이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우리 곁에 당연히 머물 줄만 알았다.
그 시절 내 곁에는 그림자 같은 한 사람이 있었다. 내 주변을 맴돌던 숱한 고백의 말들을 그는 기가 막히게 차단해 냈다. 마치 나의 전담 보디가드라도 된 양, 다른 시선이 닿을 틈도 주지 않고 내 곁을 철벽처럼 지키던 사람. 결국 그 지독한 성실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 내 첫사랑. 그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춘에서 중년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우리는 여전히 나란히 걷는 중이다.
"그땐 그랬지."
느닷없이 떠난 버스 종점의 풍경,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달려간 강촌의 밤, 술 한 잔 못 마시면서도 노래 하나로 밤을 지새우던 동아리 방. 나이팅게일 모델 후보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했지만 보란 듯이 낙방했던 그날의 겸연쩍은 기억까지. 이야기들을 복기할 때면 오래된 영사기가 돌아가듯 흑백의 장면들이 선명한 채도로 살아난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진짜 재밌었잖아. 점심때,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얼굴 빨개져서 다시 강의 듣고."
그 한마디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별것 아닌 일에도 온 마음을 다해 즐거웠던, 무모해서 아름다웠던 우리들.
졸업과 동시에 시작된 직장 생활, 그리고 서둘러 맞이한 결혼. 가끔은 이십 대 후반의 자유를 충분히 누려보지 못했다는 미련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투박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의 진짜 청춘은 이제부터라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둘이서 세계 여행을 떠나자고. 미처 다 쓰지 못한 청춘의 페이지는 그때 다시 채우면 된다고.
"나이 들어서 무슨 청춘이야." 라며 짐짓 핀잔을 주며 피식 웃지만, 마음 한구석이 몽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청춘이라는 것은 나이의 숫자에 매몰된 이름이 아니라, 함께 기억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문득 우리 아이들의 청춘을 마음속 도화지에 그려본다. 나의 이십 대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마음껏 넘어지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는 법을 배우기를. 마음껏 날갯짓하며 자신만의 계절을 살아가기를. 아름답고 자유로울 아이들의 앞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어미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지금 그대들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찬란한 조명 아래인지 마음껏 만끽했으면.
예쁘고, 찬란한 그들의 청춘. 그 곁에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않은 우리의 청춘을 나란히 두고, 지나온 시간 위로 새로운 색을 덧칠해 본다. 바람이 분다. 입춘은 넘겼지만 여전히 바람은 차다. 하지만 이 추위를 견뎌낸 초록의 새싹들이 머지않아 하얀 분홍빛으로 물들 것을 안다. 우리의 계절도 그러할 것이다.
https://youtu.be/kM2Awgig7MU?si=jJqhyOWWwJsroj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