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책을 두면 생기는 일
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다. 언제부터 TV를 보지 않았나 되돌아보니,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TV를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TV는 집안의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었다.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TV를 켜셨고, 우리는 아침 뉴스부터 연속극, 밤에는 가족 일일연속극까지 함께 보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중학교 시험기간에도 TV 소리와 함께 공부했지만, 나름 공부는 곧 잘했으니, TV가 나쁜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학교 자율학습과 독서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 집에서 TV를 켜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엄마가 되니 달라진 생각
엄마가 된 후, 환경은 또 달라졌다. 아이를 낳고, 육아 교육서와 기사를 보면서 미디어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점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거실에서 TV를 없애기로 했다. 물론, 이 선택이 '대단한 교육 철학'에서 나온 건 아니다. 그냥,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미디어 노출을 줄여보자는 엄마의 고집이었다. 부모로서의 고백이다.
거실에는 TV 대신 책장이 있다. 책상도 있고, 막내 레고도 놓여 있다. 거실은 이제 아이들이 책을 읽고, 놀이도 할 수 있는 '지식 놀이터'로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정말 재미있게 일어난다. 내가 책을 읽으니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자"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큰아이와 함께한 '유난스러운' 독서
큰아이와 함께한 육아는 밤새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특히 동화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일에 빠졌을 때는, 정말 "이게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반복이 결국 큰아이에게 한글을 배우게 해 주었다. 4살도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그 순간, 나는 '드디어 나의 노력이 빛을 보는구나!'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디어 사용, 가족회의로 정리하다
그런데, 핸드폰의 유혹이 남아 있었다. 핸드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중학교 입학 직전에,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주기로 하면서, 가족회의를 통해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울 수 있다.
카톡은 하루 1시간 사용 후 잠금 (학교 모둠활동이나 친구에게 급하게 연락이 올 수 있을 때는 시간 추가)
되도록 전화와 문자를 사용하기.
애플리케이션 제한(유튜브, 네이버, 구글 어플 지우기)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핸드폰 보지 않기
학교 등교 전에는 꺼 놓기
집에 오면 정해진 곳에 핸드폰 놓기
10시에 핸드폰 잠금
아이들이 '자기만의 규칙'을 세운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만든 규칙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기꺼이 지켜준다. 큰아이와 둘째는 아직 불만 없이 잘 따르고 있다. 막내는 아직 핸드폰이 없다.
물론, 아이들만 규칙을 지키는 건 좀 불공평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도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집에서는 일 외에는 핸드폰을 쓰지 않기, 책을 더 많이 읽기, 아이들 앞에서는 쇼츠나 게임 안 하기. 이렇게 부모가 먼저 규칙을 지키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 사실, 부모가 먼저 실천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핸드폰 하지 마"라고 말할 자격이 없을 테니까. 아직까지 잘 따라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손전등으로 몰래 독서하다 들킨 큰아이. 사진 찍으니 브이.
미디어와 책, 균형을 맞추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미디어 노출을 줄이자고 해서, 내가 '모범적인 부모'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미디어와 책의 균형을 맞추고, 아이들과 함께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부모가 미디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아이들에게 "게임하지 마", "핸드폰 하지 말라" 하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 가끔 TV 영화를 보고,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미디어 사용에 대한 균형을 잡고, 그 방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