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고 빨갛게 물들인 가을을 지나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났지만, 이상 기후로 인해 여전히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겨울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반짝이는 조명과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이고, 카페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와 귓가에 맴돈다.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로 물드는 겨울은 우리에게 설렘을 주는 계절인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생각에 설레고, 어른들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생각에 즐겁고, 설렌다.
크리스마스에는 나 홀로 집에
90년대 학교에서는 매년 11월~12월쯤 되면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구매하도록 했다. 당시 연말이 되면 편지를 써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기에 씰을 붙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우표로서의 기능은 없다.
우편 수집가 남편의 크리스마스 씰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강매를 당했던 씰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학급마다 씰 할당량이 있어서 반장이나 부반장은 무조건 구매해야 했고, 혹여나 구매를 거부하면 선생님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결핵환자를 돕자는 의도는 좋았지만, 자발적이 아닌 사실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강매 비슷하게 비싸게 팔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2000년대 우표, 편지와 함께 안녕
90년대 출처 https://blog.naver.com/wjsthfk1228/221148174910
2000년대 크리스마스는 '디지털'의 서막을 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학교에서 크레파스와 반짝이 풀로 카드를 만들고, 종이로 된 입체 카드를 쓰고 보냈던 90년대와 달리 '디지털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거쳐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본격화됐다.
2001년 12월 당시 국내 한 이동통신사의 하루 문자서비스 이용 횟수는 전달보다 20% 증가한 1000만 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의 각종 문자와 기호로 크리스마스트리나 눈사람을 그려 보내는 것이 인기였다.
보낸 뒤 답장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직접 만나 주지 않아도 돼, 젊은 층을 사이로 인기가 많았다.
첫사랑 남편과 주고 받던 추억의 러브장
그렇게 악명 높던 크리스마스 씰은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점점 사라져 지금은 강매로 이뤄지진 않는다고 한다.현대의 교육환경에서는 사실상 사라진 문화라 보아도 무방하다. 편지가 사라진 지금, 우표와 크리스마스 씰은 어느덧 추억 속 아이템이 됐다.
크리스마스 메시지. 출처 https://blog.naver.com/s2s22s2/222164107150
20억 큰 꿈을 그리는 우편수집가
우리 남편은 추억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책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우편수집 책을 꺼냈다. 남편은 어렸을 적 '꼬마 우편 수집가'였다. 여기저기 우편가게를 찾아다니며, 희귀한 우표를 구매하러 돌아다녔던 초등학생 꼬마를 생각하니,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지만, 80년대 같은 그림체.
강매당한 '크리스마스 씰'부터 광복 50주년 우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x선 발견 100주년 기념우표 등 어떻게 이걸 다 모았을까. 심지어, 옛날 지폐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여보, 우표 이제 쓰지도 못하는데 필요 있나?"
"혹시 몰라? 20억짜리 우표가 있을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남편은 쓰윽. 핸드폰 화면 속 뉴스 기사를 나에게 들이민다.
우표 한 장이 26억 원이 된 이유
1. 105년 전 제작된 미국 우표 '뒤집힌 제니'
105년 전 제작된 미국 우표'뒤집힌 제니'가 경매에서 200만 원 달러, 한화 약 26억 원에 팔렸다. 단일 미국 우표로는 가장 비싼 기록이다. 24센트에 처음 발행됐던 이 항공 배달 전용 우표가 엄청난 값으로 뛰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우표 내 그림에 있었다. 실수로 잘못 인쇄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실수는 오히려 우표의 희소성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갑자기 남편의 쓸데없던 우표가 다시 쓸모 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뒤집혔거나, 희귀한 우표가 있나.
역시 우리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계획이 다 있었구나.
이제는 비록 크리스마스 씰과 우표, 편지가 사라져 가고 있지만, 그런 물건들이 주었던 따뜻함과 소중함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의 편지 한 통'처럼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저 씰과 우표 한 장을 사는 일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기억, 그리고 우리가 느꼈던 따뜻함이 담겨 있었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 시절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