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의 기록이 매일 경신되던 그 시절, 안방 창문을 열면 바로 옆 집의 빨간 벽돌이 보이는 주택에서 나는 에어컨 없이 첫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지냈다. 땀은 줄줄 흐르고, 가만히 있어도 몸은 끈적끈적했다. 샤워를 네다섯 번 해도 그 순간에 입은 옷은 금세 축축해졌다.
낮에는 그래도 선풍기의 바람이 괜찮았지만, 밤이 되면 맞바람 하나 없는 집에서 선풍기 하나로 열대야를 버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미리 얼린 단단한 페트병을 껴안고 선풍기를 틀면,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서로 누워서 페트병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지을 때마다, 땀에 젖은 그 여름밤의 풍경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풋,”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 속에서 서로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기다리는 설렘과 더위를 이겨내는 유쾌한 방법이 얽혀, 단단한 얼음 페트병 두 개가 우리의 여름밤을 지켜주었다. 이렇게 그 작은 순간들은 더위 속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기억이 되었고, 웃음 속에 담긴 사랑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땀과 함께 웃으며, 함께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겼다.
남편 월급의 80%를 적금에 넣었다.
우리는 내 집 마련 할 때까지 악착같이 모으자고 약속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쓰고, 아꼈다.
지금 생각해도 큰아이에게 미안한 것은,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것을 정말 많이 참았다는 것이다.
임산부의 특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흔한 임산부의 투정을 단 한 번도 부린 적이 없다.
그 당시 열심히 살았던 것에는 후회는 없지만, 맘 껏 먹어 주지 못해 엄마로서, 큰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난했던 신혼부부도 맘 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남편의 월급날.
집 앞 구멍가게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포장해 오고,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빵집 매대에서 팔던 세 개에 천원인 크림빵. 그게 그렇게 맛있고, 행복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둘 밖에 모르는 이야기. 소소한 추억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으로 청약에 당첨되었을 때, 이사를 마치고 정리되지 않은 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아이들과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 있지만, 글썽 거림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어떤 마음인지를.
"당신 정말 고생 많았어."
가끔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 짓곤 한다.
"그때 정말 힘들었지만 행복했지. 물론, 세 개에 천 원 크림빵도 못 사 먹었지만"이라는 농담을 하면서.
핸드폰에 저장된 서로의 이름 "운명"
열다섯. 소년 소녀의 첫사랑.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어려운 일을 우리는 해냈네.
스물다섯. 대학교 졸업 후 취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이제는 불혹을 앞둔 우리. 중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신혼시절은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측은한 동지애와 추억할 수 있는 안줏거리들을 주었지만, 사실은 너무 고단했기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최악의 폭염이었던 올해 여름.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에어컨을 켜고도 수시로 전기세를 체크하며, 어떻게 하면 절약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의 모습은 여전하다. 아마 이 버릇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들이 덥다고 외치면, 아이들을 위해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힘들고 그리운 그 시절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더 나은 환경을 선물할 수 있는 든든한 부모가 되었다.
에어컨 없는 15평 주택에서 방 네 개, 무려 방마다 시스템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될 줄이야.
"우리 여보 성공했네?"
인생은 길게 보아야 한다는 말이 맞긴 한가보다.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우리가 얼마나 더 멋진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 있을지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만, 그곳까지의 과정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고단했을 당신의 모습을 짐작하면 벌써부터 짠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이제 훌쩍 커 각자의 시간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고, 왁자지껄 했던 다섯 식구에서 이제는 점점 우리 둘만 손잡고 저녁 산책을 나서는 날이 많아졌다. 시시콜콜한 하루 일과와 아이들 때문에 뒷목 잡았던 일들을 하소연하고, “그래, 그때 그랬지.” 라며 지나간 추억 이야기들을 한다.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로 서로 놀리고, 깔깔거리고 쉴 새 없이 떠든다. 그러고는 말한다. "그래, 우린 운명인가 보다."
작년 철학관에서 신년 운세 사주를 본 적이 있다.
"둘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네"
역시 우린 운명이라며 호들갑 떨던 당신에게 "윽, 다음 생에는 제발 나 찾지 마"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다음 생에도 수 없이 스치는 인연 속에서도 꼭 나를 찾아 주길 바라.
그땐 지금보다 덜 고생하고, 더 많이 사랑하자. 그리고 그때도 지지고 볶고 싸우며 행복하게 살자.
"첫사랑이자 내 마지막 사랑"
결혼이란 단순히 만들어 놓은 행복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 먹는 것이다.
-피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