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보다 착한 사람을 옆에 두기를 선호한다. 자신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도 함부로 지적하지 않고 늘 이해해 주고받아줄 것 같아서 편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지 좋은 친구가 돼 준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무조건 같은 편이 되어 주며 지지해주는 것이 기준이 된다. (이는 우리는 늘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는 언니가 어느 날 통화로 나에게 갑자기 나쁜 년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언니가 조금 어려워서 언니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주고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늘 언니가 원하는 것만 했기 때문에 왜 내가 언니한테 나쁜 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매번 맞춰주다가 어제 한 번 거절했다고 나쁜 년이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심정이 상하려고 했다.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을 왜 몰라줄까.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넌 착해. 그런데 착한 사람은 남을 대할 때 자기감정에 기준을 두잖아.”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칭찬이라고 느꼈고 모두와 문제없이 잘 지내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착한 게 정말 좋은 것일까? 언니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 까. 착한 기준으로 봤을 때 언니는 확실히 착한 편은 아니었다. 거칠었고, 직설적이었고, 때론 불같았다. 쓴소리를 할 때도 있었다.
착한 사람은 인간관계 기준은 모두 자기에게 있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 따라 대하는 게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하지 못한다. 본인과 친하면 이해심이 넓어지고, 본인과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넓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쪼그라든다. 실상 착한 사람이야 말로 제일 이기적이다.
언니는 내게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한 듯했다. 왜 아니라고 말할 줄 모르는지, 왜 언니라서 다 맞춰주고 있는지, 그러면서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알고 있는지, 왜 옳으면 옳다고 틀리면 틀리다고 말하지 못하는지. 나의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 무한히 착한 사람이었다. 나와 먼 사람들에게는 무관심을 친절로 포장한 착한 사람이었다. 아니면 아예 차가운 사람이었다. 과연 착하다는 말이 좋은 말일까.
착한 사람과 선한 사람은 다르다. 선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정과 감정에 기준을 두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옳으면 옳다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본인과 친해도 아니라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정이 없거나 꽉 막힌 사람이라고 한다. 나쁜 년.
그런데 때론 욕을 듣더라도 이런 나쁜 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정말 신뢰해야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