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규칙은 늘 존재하는 법
유럽 여행을 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여행 초반에는 입맛이 없어서 저녁 대신 요커트를 종종 먹었는데, 질릴까 봐 일부러 매일 다른 맛을 구매했다. 내가 아는 맛일까? 하며 뚜껑을 여는 재미가 꽤 있었다. 가끔 한국 와서도 유럽에서 사다 먹은 요거트가 떠오른다. 더위를 피해 마트에 온 김에 요거트를 찾다가 못 찾아서 직원한테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Aisle 5에 가면 있다고 하는 거다. Aisle. 절대 이 단어를 잊을 수 없다.
지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다들 내가 미국 이민을 간 줄 알지만, 그때마다 사람들한테 나도 당신처럼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웠다고 말한다. 교포 1.5세이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이민을 간 것이 아직도 신기하긴 하다.
Aisle. 처음 이 단어를 보고 나는 [아이슬]이라고 읽었다. 남동생이 듣더니만, 헐 누나 [아이슬]이 아니라 [아일]이라고 해. 동생은 고개를 휙 돌려 공항에서 승무원한테 엄마 좌석을 창가 말고 아일 자리로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만 보자, 이때가 아마 내가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이민 생활을 한 지 꽤 많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Aisle 같은 또 다른 단어가 있다. Colonel. 군사 조직에서 대령 정도 의미한다. 고등학생 때 연극 동아리에서 Arsenic and Old Lace라는 연극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첫 연극 무대가 되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Officer Brophy 브로피 경 역할을 맡았는데, 브로피 경이 하는 대사 중 하나가 "Colonel, we have nothing to report."였다.
아직도 기억하기를, 쉬는 시간에 친구 Scott이랑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을 했는데, 스캇이 [코로넬]이라고 안 해, [컬널]이라고 말하거든!라고 하는 거다.
처음 알았다. 내가 그 당시에 영어를 못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지적을 받았다.
스페인어는 모든 모음과 자음을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읽는다. 예를 들면 Aisle이면 [아이슬레], Colonel은 [코로넬]. 그래서 발음하기 쉬운 언어 중 하나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하다 보면 이렇게 영어 발음을 헷갈릴 수가 있다.
직접 경험해 보고 알기 전까지는 절대 모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언어도. 언어는 한 번 규칙을 배우면 거의 대부분의 단어를 제대로 읽을 수 있지만 (문법도 마찬가지), 예외적인 게 늘 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 예외적인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성장을 조금씩 할 수 있는 것 같다. 삶의 불규칙을 직접 마주해야지만 아, 이렇게 발음하는 게 아니지 하는 것처럼, 아 이렇게 행동해야 하구나 알게 되는 듯하다. 그 불규칙들 때문에 각자의 인생이 다채로워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