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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희 Sep 09. 2023

가르치는 일을 더는 못 하겠다 생각하게 된 이유

나도 인간인데, 너희도 인간이었지

2015년부터 사립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내 키 반만 했던 꼬마 아이들이 나보다 키가 더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던 친구들이 본인 생각을 영어로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어렵고 번아웃이 와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꼬마들한테 영어 가르치는 게 너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언제까지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업이 끝나면 기가 다 빨려 더는 사람과 대화 나눌 힘조차 없다.

30도가 웃도는 날씨인데도 옥상 바닥에 앉아 있는 게 오히려 숨통이 트일 정도였다.


본인 친구와 같은 영어 분반이 안 됐다고 반 바꿔 달라고 떼를 썼다. 수업 시작도 못 하게 나를 붙잡고 15분간 떼를 썼다. 결국 뚜껑이 열려 억지 부리지 말라고 하니 나한테 교육청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

엄마한테 일러바쳐 깜짝 놀란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연락이 왔다.


영어 전담이기 때문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영어를 가르친다. 매일 다른 학년들을 가르치다 보면 요일 별로 황당한 일이 수도 없이 많다.


수업 시간 도중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꾸 멀리 떨어져 앉아 있는 친구한테 가서 말을 건다.

내가 한 마디를 하면 세 마디로 거들며 말을 막는다. 수업을 이어갈 수가 없다.

친구가 소리 내서 문장을 읽으면, 갑자기 동물 농장이 돼버린다. 요상한 동물 소리를 내며 방해한다.

앞에서 버젓이 서서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창가로 간다. 교실 창문을 벌컥 열고 밖에 체육 하는 학생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수업 내내 필통을 허공으로 던진다.

롤휴지를 갑자기 풀어 책꽂이에 두른다. 내가 뭐 하냐고 하면 아... 휴지 두르고 있어요라고 하며 계속 두른다.


내가 주의를 주는 순간 위에 나열된 모든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더 한다. 친구들이 좀 하지 말라고 하면, 인기쟁이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미션 성공한 듯 더욱 뿌듯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 엄격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 무슨 일인지 이 학생들 수업 태도가 심상치 않다. 자꾸 언성이 높아지고 인상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나도 너무 괴롭다.


본인이 교실에 앉아 있다는 걸 자각 못 하는 것 같다. 친구들 수업 방해하는 것에 잘못을 전혀 못 느낀다. ADHD와 사회생활 부족, 그리고 심각한 자기중심적.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는지 실로 궁금하다.


심지어 학부모 공개 수업 때도 학생들은 저 난리를 친다. 보통은 말 안 듣고 떠드는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어른들 눈치 보며 얌전하게 있는데, 이 친구들은 평소대로 행동한다. 그 반을 가르친 영어 선생님이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들한테 주의를 주어도 전혀 안 먹히니 소리 지르며 따끔하게 지도했더니, 한 학부모가 공개 수업 설문지에 "소리 꽥꽥 지르시니 듣기 거북스럽습니다. 다음부터 마이크를 쓰시거나 조금 더 부드럽게 이야기해 주세요."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해당 선생님이 속상해하며 나한테 말하는데, 숨 막혔다.


본인 아들이 높은 반에 배정을 못 받아서, 영어 교사들 자질과 수업 방식에 불만족으로 평가하는 학부모님

분명 본인 딸이 금상 받은 친구보다 발음이 훨씬 좋은데 왜 은상 받았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님


지친다.


담임 선생님이랑 이야기해 보면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신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은 오죽하실까. 안쓰럽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과 몇 명 친구들이 와서 사과를 했다. 전 날 내 보고를 받은 부모님이 엄청 혼을 냈다고 한다.


절대 안 그럴게요.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데 이 친구들이 변할 거라는 기대가 안 생겼다. 정말 수업 시간에도 글 쓰는 거 싫어하는 친구가 쓴 사과 편지인데도 내 입가는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이때 느꼈다. 아 내 마음이 닫혔구나.  

내가 가졌던 학생들을 향한 열정과 애정의 불이 시름시름 꺼지고 있구나. 이 상태로 계속 가르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믿어줘야 하는데. 믿고 싶은데, 왜 한숨부터 나오지.

어린 친구들이라 기회를 줘야 하는데, 조금 많이 지쳤나 보다.


나도 인간인데, 너희도 인간이지.

나도 나란 사람을 아직도 만들고 다듬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데, 너희는 이제 막 다듬기 시작했지.

아는데.. 정말 아는데 내가 신이 아니다 보니 너희의 거친 행동들이 나한테 아무렇지가 않아. 힘이 너무 빠져.


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금씩 마음을 일으킨다. 어서 회복하고 웃으며 학생들 앞에 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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